"나의 세계는 다섯 아이들과 함께 자라납니다."
존재의 고유함을 써 내려가는 그림책 작가, 이은주 님을 만나다.
아이들이 잠든 고요한 밤.
상담실에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만지던 '전문가의 언어'는 '엄마의 문장'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상담사에서 다섯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세상에 따스한 숨을 불어넣는 그림책 글 작가로.
은주 님에게 육아는 나를 잃어가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의 자리를 조금씩 넓혀가는 성장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내게 주어진 삶이 너무 감사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이에요. 증명하기 위한 삶이 아닌, 감사함에 반응하는 삶. 제 문장이 닿는 곳마다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다정한 울림이 퍼지길 바랍니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삶의 지평을 일궈가고 있는 은주 님의 서사를 기록합니다.
PART 1. ‘청소년‧가족 상담사’에서 ‘다섯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Q1.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라는 사람을 세 가지 정체성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싶어요.
먼저 전문가로서의 저는 '상담사'예요. 사람들이 자신과 삶을 사랑하며,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일을 해왔어요. 두 번째는 지금 제 삶의 중심인 '엄마'라는 역할이에요. 다섯 아이를 키우는 이 시간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본업과도 같아요. 마지막으로 미래를 꿈꾸는 '작가'예요. 아이의 존재 그 자체를 존중하는
따스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울림이 있는 그림책 글작가가 꿈이에요.
Q2. 상담사로 일하던 시절과 지금 엄마로 사는 삶, 많이 다른가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막상 내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좀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인 줄 전에는 몰랐어요. (웃음)
이전에는 '애는 키워봤냐'는 질문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더라고요. 지금은 상담실에서 만났던 부모님들의 마음을 훨씬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상담사로 일하면서 타인의 마음을 기다려주는 훈련을 했던 게, 다섯 아이의
서로 다른 기질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데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두 역할이 생각보다 많이 연결되어 있었어요.
PART 2. 다섯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것
Q3. 다섯 아이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리 가정의 빛, 잘 웃고 씩씩한 아들 규빛이가 첫째예요. 그리고 1kg 미만 초미숙아로 태어났지만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3인 3색의 딸 세쌍둥이 아랑, 아민, 아윤이가 있고요. 뜻밖의 선물처럼 찾아온 막내 시아까지 다섯이에요.
Q4. 사실 은주 님께는 하늘에 먼저 간 아이도 있다고 하셨어요.
네. 네 쌍둥이 중 한 명을 태어난 지 20일 만에 떠나보내게 됐어요. 시온이예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언제나 기억하려고 지은 이름이에요. 그 20일도 NICU에서 잠시 면회만 가능했던 터라, 그리워하거나
나눌 추억조차 없다는 게 슬펐어요. 이 아이의 존재를 기억할 수 있는 게 저와 남편뿐이라는 것도 서글프고요.
막내 시아를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다시 일곱 식구가 된다는 사실이 위로와 치유처럼 다가왔어요. 그리고
시아가 태어나기 전에 시온이의 이야기를 먼저 완성하고 싶었어요. 슬픔과 아쉬움만이 아니라, 시온이라는
존재의 경이로움, 그로 인한 기쁨과 감격, 함께한 시간에 대한 감사를 기록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몰라요. 기록하지 않으면 흩어져 버릴 그 소중한 순간들을 붙잡아두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완성한 전자책 제목이 《모두 다 시온》이에요.
작가로서 처음 세상에 올린 글이 시온이의 이야기라는 게 참 감사해요. 앞으로 제가 쓰는 책마다 시온이처럼
일찍 떠난 아이들의 이름을 넣어주는 '기억 프로젝트'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네가 다시 올 수 없다는 걸 알아. 우리가 언젠가 너에게로 가겠지.
이제 우리는 다른 모든 아이들을 모두 다 시온이라고 생각할 거야.
시온아, 엄마가 글을 쓰는 곳마다 너의 이름이 함께 할 거야."
《모두 다 시온》 중에서
Q5. 다섯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떤 경험인가요?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정신없다"예요. (웃음) 늘 손이 부족하고, 하나하나 잘해주지 못하는 것 같은 미안함과
죄책감도 있고요. 무엇보다 나의 한계를 정말 많이 마주하는 시간이에요. 그렇지만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사람들이 "애를 왜 그렇게 많이 낳았냐", "너 인생은 언제 사냐, 안됐다"라고 말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엄마가 되고 나서 오히려 더 나다운 삶을 살게 됐거든요.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나를 제한하지 않고
더 큰 꿈을 꾸게 됐어요.
아이들이 제가 살아가는 세계를 확장시켜준 느낌이에요.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도 생겼고요. 엄마가 되면서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진다고들 하는데, 저는 나의 세계를 축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풍성하게 살아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확실히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죠.
PART 3. 아이가 잠든 밤, 꿈 꾸는 이야기를 쓰다
Q6. 그림책 작가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첫째 규빛이에게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줄 때였어요. 떠오르는 대로 지어내서 들려주곤 했는데,
그날의 주제는 감정 조절이었어요. "심술이가 찾아왔을 때는..."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문득 '이거 다른
아이들에게도 필요하겠는데? 잊어버리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이가 잠들자마자 컴퓨터 앞에
달려가 단숨에 적어 내려갔어요. 그게 첫 그림책 《내 마음속 심술이》의 시작이었어요.
우리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위해서 책을 만들기도 했어요. 너희들 모두 소중하고 특별하다는 것, 아이마다 각각 다른 매력과 장점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첫째는 정말 잘 웃고, 씩씩하고 성실하게 자기 일을 잘 해요. 그래서 《잘 웃는 아이》에는 그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행복한 마음과 그저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았어요. 엄마로서 이것저것 욕심내지만, 사실은 '더 바랄 것이 없는 너의 존재'를 표현하고 싶었던 거예요.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 잘 해야 하는 건 아니야.
사랑받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은 없어."
《잘 웃는 아이》 중에서
Q7.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세요?
먼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따스한 이야기예요. 있는 그대로의 존귀함,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각자의 고유함을 존중하는 주제를 자주 생각해요.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이야기이자, 상담이나 교육 현장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방향으로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할 만한 책.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때로는 아이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나게 하고, 때로는 깔깔대며 웃게 하는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Q8. 꿈을 향해 실제로 어떤 시도들을 해오셨나요?
사실 처음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혼자 조용히 품고만 있었어요. 관련 전공자도 아니고, 배운 적도 없고, 해낸 것도 없어서 말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민망했어요. 그런데 꿈이 자꾸 내 안에서 꿈틀거리더라고요. '되면 성취감 있고 한 걸음 나아갈 좋은 기회, 안 되면 도전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공모전에 도전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돌봄 서비스 수기, 육아 체험수기, 주부 수필, 행복육아 영상공모전까지 다양하게 도전했는데, 대부분 떨어졌어요.
(웃음) 그래도 유일하게 2025년 세움북스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서 가작을 받았어요. 서울에서 시상식이 있었는데 아이들 때문에 못 갔고, 저 빼고 다 참석했다는 후문을... (웃음) 그래도 그 당선이 정말 큰 용기가 됐어요.
1인 출판으로 전자책을 직접 만들고 출간까지 해봤어요. 출판사 신고부터 ISBN 발급, PDF 완성, 출간 신청까지 모두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는데, 완성하고 나니 정말 뿌듯했어요. 손재주도 없고 방법도 모르는데 더미북까지 직접 만들어봤더니,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게 더욱 실감 났어요.
생각해보면 제 모든 도전과 꿈, 이야기들이 다 우리 아이들에게서 시작되거든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아이들에게 감사해요.
Q9. 작가로서의 꿈이 있다면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 작가로 초청받아 가는 거예요! '이건 권위 있는 곳이니까 애들 놔두고라도 꼭 가야 해!' 하고 명분을 만들어서요. (웃음) 그리고 전문 화가가 아니더라도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요. 나와의 작업이 그분들의 신인 작가 데뷔가 되면 좋겠다는 꿈도 있어요.
Q10. 혼자만의 꿈이 아니라 함께하는 방식도 시도하고 계신 것 같아요.
엄마 모임에서 '우리 아이만의 책 만들기', '나만의 내러티브 만들기' 같은 시간을 함께 해봤어요. 거기서 이름도
새로 붙였어요. '서사 제작소'라고요. 나라는 브랜드,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뜻이에요. 서로의 꿈을 공유하고 응원하며 함께 성장할 사람을 '꿈메이트'라고 불러봤는데요. 해낸 것도, 준비된 것도 없어도 과정 중에
있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무척 힘이 되고 감사한 일이었어요. 그런 공동체가 있을 때 더욱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 현재의 모습과 다르더라도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사람, 어떤 것이든 인정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 성장과 성공을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더 좋은 가치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감사하며 나눌 줄 아는 사람들과요.
PART 4. 바쁜 일상 속, 나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
Q11. 육아와 자기 성장을 함께 가져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물리적인 시간이 정말 없어요. 나의 의지와 계획대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고요. 때로는 무기력감이나 좌절감도 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만을 위한 시간'에 대한 갈증이 커지면서, 오히려 주어진 작은 시간들을 더 의미 있게 쓰게 됐어요. 잠잘 시간도 없다 보니 일찍 잘 수밖에 없고, 핸드폰을 볼 여유가 없으니 의도치 않게 시간을 잘 활용하게 되더라고요. (웃음)
올해는 운동, 독서, 영어 공부 세 가지만 매일 조금씩 꾸준히 지켜나가려고 계획해봤어요. 거창하지 않아요. 그냥 나를 위한 시간을 의도적으로 챙기는 거예요.
엄마 모임도 나를 위한 시간으로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독서 모임, 부모 교육, 미술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함께했는데, 단순히 육아 정보를 나누는 모임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이에요. 그 안에서 저도 많이 자랐고, 이런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의 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Q12. BYS 영어 수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런 마음에서였나요?
처음엔 영어보다 '생각 수업'에 매료되어 시작하게 됐어요. 엄마가 된 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혀진 것만
같았기에, 나를 돌아보고 발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풀타임 엄마' 같이 느껴지던 나에게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켜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기도 했고, 수업 시간을 통해 나와 내 꿈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기는 것도
좋았어요.
다섯째를 임신하면서 수강을 쉬었다가, 출산 후 큰 맘 먹고 다시 등록하게 됐어요. 신생아가 있는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지만, '내가 내 꿈을 정말로 믿는다면 이 끈을 놓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언젠가 볼로냐에 가려면 영어가 필요하잖아요. (웃음) 말로 꺼내 놓으면 그 말 때문에라도 더 나아가게 되니까요. 함께 꿈을 꾸는 꿈메이트들이 있다는 것도 큰 힘이 돼요. 2026년이 기대되는 이유예요.
EPILOGUE: 나의 정체성
Q13. 마지막으로, 지금의 이은주 님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세요.
'다섯 아이와 함께 자라나는 행복한 엄마'요. 지금 저는 '선물 같은 아이들과의 행복한 육아 시간'과 '엄마지만 여전히 자라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히 보내고 싶어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무언가를 달성하고 증명하고자 발버둥 치는 것도 아니고요.
내게 주어진 삶이 너무 감사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즐거워서,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되어서. 그래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이에요. 그게 지금 저예요.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도 이렇게 살아볼 수 있겠다'고 느껴준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Brand Profile:
말이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의 약자 · 시온이의 태명
다섯 자녀와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소재를 발견하는 엄마 작가입니다. 각각의 고유한 존재를 존중하며 우리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씁니다. 건강한 가치관과 따스한 정서를 남기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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