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I wanted only to try to live in accord with the promptings which came from my true self. Why was that so very difficult?"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서문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아이 하원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였기에 아무것도 되지 않은 걸까.

2010년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남편을 만났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시간을 썼다. 남편은 연구원, 사립대 교수를 거쳐 국립대 교수가 되었다. 일본어 통번역 비서로 일했던 나는 사랑하는 남편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 속에서 무언가가 솟아 나오려 했다. 케이크 토퍼를 만들어 팔 때도, 공인중개사를 준비할 때도, 필라테스 강사를 할 때도, 요가 자격증을 딸 때도. 그런데 그것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었다. 솟아 나오려 할 때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하기 좋은 일"로 타협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그래.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방황하며 스스로를 누구 아내, 누구 엄마로 정의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날 카페에서 만난 지인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알아보았다. 나도 저 사람처럼 빛나기를 원했다.

2025년 3월 4일, BYS 영어수업의 인터뷰 신청서를 꾹꾹 눌러 쓰던 그때의 나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정확히 1년 뒤, 내가 이곳의 직원이 되어 타인의 빛을 발굴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을 줄은.


PART 1. 상실 —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Q. 브런치 글 "남편은 국립대 교수가 되었고 나는 애엄마가 되었다"가 3만 뷰를 넘겼습니다. 그 글을 쓰게 된 날이 기억나세요?

남편이 종이 한 장을 가져와서 테이블에 올려두고 우리 가정 재테크 얘기를 꺼냈어요. 부부로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제가 경제적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에 괜스레 눈물이 쏟아졌어요. 2010년 일본에서 유학할 때 남편을 만났거든요.  남편은 항상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었어요. 같은 학교에서 같은 시간을 썼는데, 남편은 꿈을 이뤘고 나는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질문이 새벽 5시에 눈을 뜨게 만들었어요.

Q. 결혼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어학을 전공했어요. 원래는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한 승무원이 되고 싶었는데 물 공포증이 있어서 수영을 못했거든요. 그래서 비서로 전향했는데, 비서 일이 제 성격에 정말 잘 맞더라고요. 보스도 젠틀한 분이었고, 일본어 통번역도 할 수 있어서 전공도 살릴 수 있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 그 회사에서만 쭉 일했어요.

그런데 지금 '회사'라는 곳은 제 스케줄에 절대 다닐 수 없는 곳이 됐어요. 아이를 낳고, 양가 부모님 손을 빌릴 수 없는 타지로 이사 오고 나서, 저는 진짜로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했어요.

Q. 케이크 토퍼, 풍선 판매, 공인중개사, 필라테스까지.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걸 시도하셨어요.

모두 다 "아이를 키우며 하기 좋은 일"이었어요. 그게 문제였는데 그때는 몰랐죠. 케이크 토퍼는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이 수시로 휴원하는 바람에 만들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공인중개사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아가며 저녁마다 공부했는데 2문제 차이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이럴 때마다 결국엔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그래" 하게 되더라고요. 자존감이 점점 떨어져 갔어요. 필라테스는 10kg 이상 감량하면서 시작했는데,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강사를 그만둬야 했어요. 그나마 일한 건 일주일에 딱 하루 저녁 7시 50분 수업이었어요. 빈속으로 가서 시급 3만원짜리 수업을 하고, 배가 고파서 집에 걸어오며 배달 앱을 켜서 먹고 싶던 연어를 담았다가 배달비 포함 31,000원인 걸 보고 조용히 끄고 삶은 계란 까먹었어요. 돈을 번다고 아끼려는 제 모습에 웃음이 나왔지만, 사실 많이 쓸쓸했어요. 


부단히 노력한 모든 이유에 정작 나 자신은 빠져 있었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다 원데이 클래스였어요. 돈 내고 하루 배우면 되는 것들이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때 깨달은 것 같아요. “하루 아침에 안 되는 것에 기꺼이 시간을 던져 봐야겠다. 그게 나의 서사가 될 거야.” 그게 운동이었고, 그다음이 영어 공부였어요.


Q. 영국 여행에서 "사진 찍어주세요" 한마디가 안 나왔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재작년에 가족이 영국에 한 달 살기를 했어요. 안식년을 미리 경험해보려고요. 그런데 여행 내내 사진을 찍을 일이 많은데 제가 외국인한테 그 말 한마디를 영어로 못하겠더라고요. 수능도 보고 취업 준비할 때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왜 이 말 한마디가 안 나올까. 눈으로만 공부했으니까요. 경제적으로도 남편한테 의지하고 있는데 언어까지 의지하는 모습이 답답했어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이 분명히 있는데, 그걸 꺼낼 언어가 없었던 거예요. 영어만이 아니라 제 삶의 언어 자체가요.


PART 2. 알 껍데기 속 고요한 분투


Q. BYS를 시작하기 전에 다른 방법도 시도해보셨나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영어 스피킹 앱 두 개를 덜컥 결제했어요. 그래도 작심삼일은 아니었어요. 작심삼십일은 했거든요. 그런데 앱을 켜고 휴대폰에 대고 이야기할 때마다 자꾸 회의감이 들었어요. 외국인을 매일 대면해도 늘까 말까 한 영어가 기계에 대고 이야기한다고 늘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연고 없는 타지에서 아이 둘 키우며 외로운데, 화면 속 AI와의 대화는 너무 지루하고 적막했어요. 그러다 지인이 카페에서 BYS 이야기를 하는데, 뒤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지금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거 아세요?" 여쭤봤더니, 그게 BYS의 가치이자 모토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날 집에 오자마자 바로 인터뷰 신청을 했어요.

Q. 인터뷰 당일은 어떠셨나요?

인터뷰 중에 제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이 따뜻하게 호응해 주시는데 왈칵 눈물이 났어요. 그렇게 합격해서 바로 수업을 들었어요. 2025년 3월 4일이었어요. 그때는 정말 꿈에도 몰랐죠. 1년 뒤에 제가 이곳의 직원이 될 줄은.

Q. BYS 첫 위클리 트레이닝 영상을 찍던 날을 기억하세요?

살면서 영어로 1분을 말해본 적이 없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완벽한 문장과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초반에는 최소 50번은 다시 찍어야 했어요. 1년 지난 지금은 30번 정도면 되고요. 그 50번 안에 뭔가가 쌓였어요. 틀리면 어때, 이거 외국어잖아. 그 마음이 생기는 데 50번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바디프로필의 완벽한 한 컷처럼, 50번의 테이크는 단 1분을 위해 저 자신을 계속 깎아내고 다듬어가는 과정이었어요. 영상에 쓰이지 못한 50번의 테이크가 진짜 근육을 만든 거예요.” 첫날 '투데이 모닝'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안 해요. 저는 그게 영어가 늘었다는 증거예요.


Q. 석사 1학기 때 아이들이 다섯 번이나 열이 나고 응급실도 다녀왔다고요. 그때도 트레이닝을 놓지 않으셨어요.

바쁘니까 그만둘까?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오히려 바쁘니까 꼭 해야겠다로 바뀌더라고요. 트레이닝은 저한테 양치 같은 거예요. 안 하면 찝찝한 거요. 처음엔 주 5회 하다가 클래스메이트 분들 보면서 자극받아서 지금은 주 7회 엄수하고 있어요. 나트랑 여행에서 해변에 앉아서도 찍고, 아이가 고열로 아픈 밤에 어둠 속에서 얼굴도 안 나오게 카메라를 켠 적도 있어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냥 그렇게 매일 했던 것 같아요. 알을 깨는 건 한 번의 큰 사건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쪼아대는 거더라고요.


PART 3. 발견 — 거울 속에서 나를 만나다


Q. 생각수업이 혜지 님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나요?

생각수업을 하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결혼하고 해보려던 일들이 다 '육아를 하며 하기 쉬운 일'이었고, 영어 공부를 하려던 이유도 '아이 학교가 이중언어를 쓰니까', '남편 안식년 때문에'였다는 것을. 부단히 노력한 모든 이유에 정작 나 자신은 빠져 있었던 거예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내 꿈은 무엇인가." 그 질문들 앞에서 오래 나를 들여다봤어요. 10년 동안 경력단절녀로 살면서 나를 많이 잃었더라고요. 그러다 보이더라고요. 나 또한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게,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최혜지로 사는 게 우리 가족에게도 진짜 행복이라는 게요.

Q. 그 확신이 언제 왔나요?

아이가 옆에서 영어 일기 찍는 걸 지켜보더니 이러는 거예요. "난 어른 되면 엄마처럼 공부 많이 해야 돼." 그리고 제가 핸드폰을 책상에 올려두면 옆에 와서 자기가 "하이~" 하면서 영어로 흉내 내는 거예요. 저는 방치형 부모 밑에서 자랐어요. 제가 5학년일 때 3학년, 6살 동생들을 제가 챙겼거든요. 부모님과 여행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내 아이는 꼭 내 손으로 키우겠다고 했는데, 그 아이가 엄마의 알 깨는 모습을 보고 자라고 있더라고요. 내가 빛나야 아이들도 빛을 알아본다는 것, 그때 알았어요.

Q. 영어가 실제로 달라진 순간이 있었나요?

대학원에서 어떤 외국인이 저한테 한국어로 길을 물어봤어요. 예전 같았으면 한국어로 물어보면 진짜 다행이다 했을 텐데, 제가 오히려 영어로 답했어요. "아이캔, 해피~" 하면서요. 그 사람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면서 계속 스몰토크를 나누려고 시도했어요. 예전의 저는 아는 단어가 있어도 문장으로 못 만들어서 입을 닫았는데, 이제는 다르더라고요. 영어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습득하는 거라는 것, BYS에서 배운 거예요.

Q. 올해 39살 생일에 특별한 감정이 있으셨다고요.

아이가 색종이 한 장, A4 용지 한 장에 글을 써서 줬는데, 그걸 보는데 문득 이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진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구나. 새벽 5시에 눈을 뜨며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를 물었던 사람이, 이렇게 사랑받고 있구나 싶었어요. 신랑도 저한테 사랑을 알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PT 비용이 걱정됐거든요. 아이들 교육에 먼저 써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신랑이 "PT 받는 돈이 있든 없든 우리 인생에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신랑이 배움에 있어서 굉장히 적극적인 사람이에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이 동기부여를 받아요. 내가 나를 위해 뭔가를 써도 괜찮다는 것, 신랑이 먼저 알려줬어요.


PART 4. 정체성 — 본질을 꿰뚫는 가치 발견자


Q.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선택하셨는데, 혜지 님 이력을 보면 파워블로그, 카메라 악세사리 사업, 케이크 토퍼 판매, 비서 경력까지... 생각해보면 다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었네요.

지금 생각하면 다 마케팅이었는데, 그때는 몰랐어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케이크 토퍼를 찍어서 올리고, 악세사리를 만들어서 팔고. 그게 다 내 것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었던 거잖아요. 요즘도 그래요. BYS 클럽에서 아이들과 영어 그림책을 읽고 있는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돌려줘야 하니까 제가 활동지를 만들었어요. 그걸 블로그에 올리고 인스타로 알려서 공유하려고 했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것도 마케팅이잖아, 나를 브랜딩하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때는 항상 '육아하며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했어요. 나를 위해서라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했고요.

Q. 비서 경력도 마케팅과 연결이 되나요?

비서는 보스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고, 그것을 가장 좋은 형태로 외부에 전달하는 일이에요. 돌이켜보면 마케팅이랑 구조가 똑같아요. 누군가의 본질을 읽고, 세상에 가장 잘 보이는 방식으로 꺼내는 것이거든요. 저는 그걸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 같아요. 그냥 그게 마케팅인 줄 몰랐을 뿐이지.


Q. 생각수업과 50번의 테이크는 마케팅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생각수업이 저에게 '너는 누구냐'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면, 50번의 테이크는 '무엇이 가장 나다운가'를 선별해 내는 마케팅적 훈련이었어요. 50번을 찍는다는 건 단순히 반복하는 게 아니라, 50개의 선택지를 만드는 과정이에요. 다 찍고 나서 영상을 하나하나 돌려보며 '이건 나답지 않아', '이게 진짜 내 모습이야'라고 골라내죠. 마케팅의 핵심도 많은 데이터 중에서 브랜드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 하나를 발굴해 내는 '편집의 감각'이거든요.
나라는 브랜드를 발견하기 위해 50번씩 시도하고 골라내던 그 감각이 근육처럼 쌓였어요. 나를 깊게 들여다보니 이제는 누군가를 보더라도 그 사람만의 고유한 빛이 무엇인지, 어떤 서사를 꺼내 놓아야 할지가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나를 발굴해본 경험이 다른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Q. AI 시대에 마케터로서 어떤 확신을 갖고 계세요?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매일 느끼는 점이 있어요. AI가 논문도 써주고, 초안도 잡아주고, PPT도 만들어주는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내 언어로 직접 전달하는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귀해졌어요. 기술이 준비를 도와줄 순 있어도, 결정적인 순간 무대 위에 서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나의 언어거든요. AI 뒤에 숨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도구 삼아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국제학회 발표는 어떻게 결심하셨어요?

교수님이 학회 참석을 제안해 주셨을 때, BYS 이전이었으면 해외 학회는 제 인생에 없는 일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매주 1분 스피치를 해왔잖아요. '10분이면 위클리 트레이닝 10개다, 한번 해보자' 싶었어요. 10분 스크립트를 전부 외워서 발표했고, 에디터 두 분의 질문도 받았어요. 에디터들이 흥미를 갖고 질문해 주는 게 발표를 잘했다는 표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교수님도 "발표 너무 잘했다, 스페인 학회도 가보자"고 제안해 주셨어요. 지금 7월 스페인 학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PART 5. 연대 - 누군가의 알 곁에서 함께 쪼다


Q. BYS 직원 제안을 받으셨을 때 어떠셨나요?

CEO의 책장 클럽 수업 끝나갈 무렵에 대표님이 제안을 주셨어요. BYS는 1년 동안 너무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좋아하던 곳이라, 10초 정도 고민하다가 대학원 수업을 줄여서라도 하겠다고 했어요. 이력서를 정성껏 써서 드렸는데, 대표님이 "저는 지금까지 직원들의 이력서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BYS 교재에 이런 내용이 있거든요. "BYS에서 트레이너를 뽑을 때, 우리는 화려한 언변을 보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의 성실함을 관찰하고 매일 제출하는 과제를 평가합니다." 빈말이 아닌 삶으로 살아냈던 저의 1년, 그 성실함을 보고 선택해 주신 거죠.

Q. BYS 클럽에서 직접 커뮤니티도 두 개 운영하신다고요.

'Eat Mate''함께 올림'이에요.
’Eat Mate’는 식단·건강 루틴 모임인데요, 저희 친정엄마가 40대 초반에 암에 걸리셨었거든요. 지금은 나으셨는데, 저는 엄마를 너무 많이 닮아서 그때부터 건강이 좀 신경 쓰이더라고요. 내년이면 마흔이기도 하고요. 바디프로필 찍으면서 식단 관리를 해봤는데, 혼자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흐트러지더라고요.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인데, 다 같이 건강하게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만들었어요. 

’함께 올림’은 나의 서사를 기록하는 모임이에요. 저는 잘해서 올리는 게 아니거든요. 나중에 이불킥할 것 같다 하면서도 올려요. 제가 영어를 잘하게 됐을 때 그걸 보여주려면, 못했던 모습이 먼저 있어야 되잖아요. 그 서사를 같이 쌓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BYS에는 잔잔한 분들이 많은데, 용기를 못 내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제 부끄러운 기록이 누군가에게 시작할 용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분들한테 첫 발걸음이 될 수 있으면 좋겠고, 제 이야기가 그냥 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 것 같아서 좋아요.

PART 6. 앞으로 — Essence Discoverer 최혜지


Q. 대학원, 학회, 직원까지. BYS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요?

BYS에 오기 전에도 대학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런데 면접 전날까지 갈지 말지 고민했거든요. 선생님이 "혜지 님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계속 에너지를 주셨어요. 그 말이 저를 밀었어요. 누군가 내 안의 빛을 알아봐 줬기 때문에, 저도 알을 깰 수 있었어요.

Q. 4~5년 뒤 안식년을 떠나는 혜지 님은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4~5년 뒤에 제가 영어를 얼마나 잘하게 될지, 그게 요즘 진짜 기대돼요. 2024년 6월에 브런치에 처음 쓴 글 제목이 "남편은 국립대 교수가 되었고 나는 애엄마가 되었다"였어요. 2026년 3월엔 공부도 하고 직장도 다니는 엄마가 됐고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계속 젖어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어디까지 와 있을지, 그게 너무 기대돼요. 가장 빛날 나의 40대, 기다려라.


Q. 혜지 님에게 BYS란 무엇인가요?

동행이에요. 혼자가 아니다, 라고 끊임없이 알려주는 곳이에요. 과정 그대로를 응원해 주고 괜찮다고 해주는 곳이요. 그리고 마케팅 관점으로 BYS를 풀어보자면, 저한테 BYS는 고관여예요. 비용도 들고, 매일 트레이닝도 해야 하고, 관계도 가져야 되니까 쉽지 않아요. 근데 그렇기 때문에 성장의 강도가 달라요. 원데이 클래스는 저관여잖아요.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는 거니까요. BYS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성장이 아니라, 나만의 그래프가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 곳이에요. 스픽 같은 앱은 나 혼자 하는 거지만, BYS는 관계를 가져야 되거든요. 그게 이 둘의 차이인 것 같아요.

Q. BYS 직원으로서 그 역할은 어떤 모습일까요?

마케팅의 본질은 가치 없어 보이는 것에서 본연의 가치를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에요. 저는 저 자신을 발굴해 본 경험이 있기에, 이제 다른 멤버들의 서사 속에 숨겨진 빛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싶어요. 차분하고 조용한 분들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페이스메이커 같은 트레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Q. BYS의 브랜드 무드와 혜지 님의 유머러스한 성격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가 기대됩니다. 인터뷰 중 언급하신 '스티커' 비유가 인상적이었어요.

BYS는 정말 예쁘고 깔끔하죠. 마치 애플이나 무인양품처럼 세련되고 절제된 무채색의 매력이 있어요. 저는 그 무채색 위에 '키티 스티커'를 하나 툭, 붙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이 "웃기다"라는 말이거든요. 무채색의 공간에 분홍색 키티 스티커 하나가 붙으면 갑자기 유쾌한 에너지가 돌잖아요? 저는 BYS의  브랜드 정체성을 사랑하고 존중하면서도, 우리 멤버들이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유쾌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저만의 색깔을 더하고 싶습니다.

Q. 무채색 위에 붙은 분홍색 스티커라니, 혜지 님 다운 발상이네요.

공부도 성장도 결국 삶의 일부잖아요. 비장하면 금방 지칠 때가 있어요. 저는 멤버들의 장점을 발굴해서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성장하는 과정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는 마케터가 되고 싶어요. BYS라는 멋진 도화지 위에 제가 붙일 '스티커'들이 어떤 그림을 만들어갈지 저도 참 기대됩니다.

Q. 지금 새벽 5시에 눈을 뜨며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를 묻고 있는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저도 그 새벽에 있었어요. 아무 정답도 안 나왔고요. 그런데 그 새벽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여기 없었을 거예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게 있는데 어디를 가리키는지 모르겠다면, 이미 절반은 온 거예요. 그 모호함이 알 껍데기가 안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는 신호거든요. 혼자 쪼아가는 게 막막하다면, 먼저 알을 깨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오세요. 당신 안의 빛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혜지 님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발굴자(The Discoverer)’요. 마음에 드는 단어가 없어서 AI한테 저를 표현해달라고 했는데, '발굴자'라고 하더라고요. 발굴자라고 하니까 약간 포크레인 같은 거예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발굴자가 딱인 것 같아요. 저 자신도 발굴해왔고, 다른 사람한테도 좋은 점을 발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무언가에서 가치를 꺼내서 보여주는 게 마케팅이라면, 저는 사람들과 그 과정을 나누고 싶어요. 당신에게도 고유한 빛이 있으니, 우리 함께 그 빛을 발견해보자고요.


EPILOGUE


나의 빛을 발굴하여 누군가의 빛을 발견하는,
Essence Discoverer 최혜지


새벽 5시에 눈을 뜨며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를 물었던 사람이 있었다.

알 껍데기 안에서 오래 웅크렸고, 오래 쪼았고, 오래 기다렸다.

그 기나긴 시간을 거치며 그녀는 깨달았다.

“내가 찾아 헤매던 정답은 바깥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내 안에 솟아나는 것들이 나를 반짝이는 빛이라는 사실을.”

이제 그녀는 그 빛으로 다른 사람의 알을 비추며, 당신 곁에 나란히 앉아 있다.

당신 안의 숨겨진 빛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세상 밖으로 꺼내줄 '본질 발굴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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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I wanted only to try to live in accord with the promptings which came from my true self. Why was that so very difficult?"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서문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아이 하원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였기에 아무것도 되지 않은 걸까.


2010년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남편을 만났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시간을 썼다. 남편은 연구원, 사립대 교수를 거쳐 국립대 교수가 되었다. 일본어 통번역 비서로 일했던 나는 사랑하는 남편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 속에서 무언가가 솟아 나오려 했다. 케이크 토퍼를 만들어 팔 때도, 공인중개사를 준비할 때도, 필라테스 강사를 할 때도, 요가 자격증을 딸 때도. 그런데 그것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었다. 솟아 나오려 할 때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하기 좋은 일"로 타협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그래.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방황하며 스스로를 누구 아내, 누구 엄마로 정의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날 카페에서 만난 지인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알아보았다. 나도 저 사람처럼 빛나기를 원했다.


2025년 3월 4일, BYS 영어수업의 인터뷰 신청서를 꾹꾹 눌러 쓰던 그때의 나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정확히 1년 뒤, 내가 이곳의 직원이 되어 타인의 빛을 발굴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을 줄은.


PART 1. 상실 —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Q. 브런치 글 "남편은 국립대 교수가 되었고 나는 애엄마가 되었다"가 3만 뷰를 넘겼습니다. 그 글을 쓰게 된 날이 기억나세요?

남편이 종이 한 장을 가져와서 테이블에 올려두고 우리 가정 재테크 얘기를 꺼냈어요. 부부로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제가 경제적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에 괜스레 눈물이 쏟아졌어요. 2010년 일본에서 유학할 때 남편을 만났거든요.  남편은 항상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었어요. 같은 학교에서 같은 시간을 썼는데, 남편은 꿈을 이뤘고 나는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질문이 새벽 5시에 눈을 뜨게 만들었어요.

Q. 결혼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어학을 전공했어요. 원래는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한 승무원이 되고 싶었는데 물 공포증이 있어서 수영을 못했거든요. 그래서 비서로 전향했는데, 비서 일이 제 성격에 정말 잘 맞더라고요. 보스도 젠틀한 분이었고, 일본어 통번역도 할 수 있어서 전공도 살릴 수 있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 그 회사에서만 쭉 일했어요. 그런데 지금 '회사'라는 곳은 제 스케줄에 절대 다닐 수 없는 곳이 됐어요. 아이를 낳고, 양가 부모님 손을 빌릴 수 없는 타지로 이사 오고 나서, 저는 진짜로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했어요.

Q. 케이크 토퍼, 풍선 판매, 공인중개사, 필라테스까지.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걸 시도하셨어요.

모두 다 "아이를 키우며 하기 좋은 일"이었어요. 그게 문제였는데 그때는 몰랐죠. 케이크 토퍼는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이 수시로 휴원하는 바람에 만들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공인중개사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아가며 저녁마다 공부했는데 2문제 차이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이럴 때마다 결국엔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그래" 하게 되더라고요. 자존감이 점점 떨어져 갔어요. 필라테스는 10kg 이상 감량하면서 시작했는데,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강사를 그만둬야 했어요. 그나마 일한 건 일주일에 딱 하루 저녁 7시 50분 수업이었어요. 빈속으로 가서 시급 3만원짜리 수업을 하고, 배가 고파서 집에 걸어오며 배달 앱을 켜서 먹고 싶던 연어를 담았다가 배달비 포함 31,000원인 걸 보고 조용히 끄고 삶은 계란 까먹었어요. 돈을 번다고 아끼려는 제 모습에 웃음이 나왔지만, 사실 많이 쓸쓸했어요. 


부단히 노력한 모든 이유에 정작 나 자신은 빠져 있었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다 원데이 클래스였어요. 돈 내고 하루 배우면 되는 것들이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때 깨달은 것 같아요. “하루 아침에 안 되는 것에 기꺼이 시간을 던져 봐야겠다. 그게 나의 서사가 될 거야.” 그게 운동이었고, 그다음이 영어 공부였어요.

Q. 영국 여행에서 "사진 찍어주세요" 한마디가 안 나왔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재작년에 가족이 영국에 한 달 살기를 했어요. 안식년을 미리 경험해보려고요. 그런데 여행 내내 사진을 찍을 일이 많은데 제가 외국인한테 그 말 한마디를 영어로 못하겠더라고요. 수능도 보고 취업 준비할 때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왜 이 말 한마디가 안 나올까. 눈으로만 공부했으니까요.

경제적으로도 남편한테 의지하고 있는데 언어까지 의지하는 모습이 답답했어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이 분명히 있는데, 그걸 꺼낼 언어가 없었던 거예요. 영어만이 아니라 제 삶의 언어 자체가요.

PART 2. 알 껍데기 속 고요한 분투


Q. BYS를 시작하기 전에 다른 방법도 시도해보셨나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영어 스피킹 앱 두 개를 덜컥 결제했어요. 그래도 작심삼일은 아니었어요. 작심삼십일은 했거든요. 그런데 앱을 켜고 휴대폰에 대고 이야기할 때마다 자꾸 회의감이 들었어요. 외국인을 매일 대면해도 늘까 말까 한 영어가 기계에 대고 이야기한다고 늘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연고 없는 타지에서 아이 둘 키우며 외로운데, 화면 속 AI와의 대화는 너무 지루하고 적막했어요. 그러다 지인이 카페에서 BYS 이야기를 하는데, 뒤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지금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거 아세요?" 여쭤봤더니, 그게 BYS의 가치이자 모토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날 집에 오자마자 바로 인터뷰 신청을 했어요.

Q. 인터뷰 당일은 어떠셨나요?

인터뷰 중에 제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이 따뜻하게 호응해 주시는데 왈칵 눈물이 났어요. 그렇게 합격해서 바로 수업을 들었어요. 2025년 3월 4일이었어요. 그때는 정말 꿈에도 몰랐죠. 1년 뒤에 제가 이곳의 직원이 될 줄은.

Q. BYS 첫 위클리 트레이닝 영상을 찍던 날을 기억하세요?

살면서 영어로 1분을 말해본 적이 없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완벽한 문장과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초반에는 최소 50번은 다시 찍어야 했어요. 1년 지난 지금은 30번 정도면 되고요. 그 50번 안에 뭔가가 쌓였어요. 틀리면 어때, 이거 외국어잖아. 그 마음이 생기는 데 50번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바디프로필의 완벽한 한 컷처럼, 50번의 테이크는 단 1분을 위해 저 자신을 계속 깎아내고 다듬어가는 과정이었어요. 영상에 쓰이지 못한 50번의 테이크가 진짜 근육을 만든 거예요.” 첫날 '투데이 모닝'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안 해요. 저는 그게 영어가 늘었다는 증거예요.

Q. 석사 1학기 때 아이들이 다섯 번이나 열이 나고 응급실도 다녀왔다고요. 그때도 트레이닝을 놓지 않으셨어요.

바쁘니까 그만둘까?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오히려 바쁘니까 꼭 해야겠다로 바뀌더라고요. 트레이닝은 저한테 양치 같은 거예요. 안 하면 찝찝한 거요. 처음엔 주 5회 하다가 클래스메이트 분들 보면서 자극받아서 지금은 주 7회 엄수하고 있어요. 나트랑 여행에서 해변에 앉아서도 찍고, 아이가 고열로 아픈 밤에 어둠 속에서 얼굴도 안 나오게 카메라를 켠 적도 있어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냥 그렇게 매일 했던 것 같아요. 알을 깨는 건 한 번의 큰 사건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쪼아대는 거더라고요.

PART 3. 발견 — 거울 속에서 나를 만나다


Q. 생각수업이 혜지 님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나요?

생각수업을 하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결혼하고 해보려던 일들이 다 '육아를 하며 하기 쉬운 일'이었고, 영어 공부를 하려던 이유도 '아이 학교가 이중언어를 쓰니까', '남편 안식년 때문에'였다는 것을. 부단히 노력한 모든 이유에 정작 나 자신은 빠져 있었던 거예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내 꿈은 무엇인가." 그 질문들 앞에서 오래 나를 들여다봤어요. 10년 동안 경력단절녀로 살면서 나를 많이 잃었더라고요. 그러다 보이더라고요. 나 또한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게,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최혜지로 사는 게 우리 가족에게도 진짜 행복이라는 게요.

Q. 그 확신이 언제 왔나요?

아이가 옆에서 영어 일기 찍는 걸 지켜보더니 이러는 거예요. "난 어른 되면 엄마처럼 공부 많이 해야 돼." 그리고 제가 핸드폰을 책상에 올려두면 옆에 와서 자기가 "하이~" 하면서 영어로 흉내 내는 거예요. 저는 방치형 부모 밑에서 자랐어요. 제가 5학년일 때 3학년, 6살 동생들을 제가 챙겼거든요. 부모님과 여행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내 아이는 꼭 내 손으로 키우겠다고 했는데, 그 아이가 엄마의 알 깨는 모습을 보고 자라고 있더라고요. 가 빛나야 아이들도 빛을 알아본다는 것, 그때 알았어요.

Q. 영어가 실제로 달라진 순간이 있었나요?

대학원에서 어떤 외국인이 저한테 한국어로 길을 물어봤어요. 예전 같았으면 한국어로 물어보면 진짜 다행이다 했을 텐데, 제가 오히려 영어로 답했어요. "아이캔, 해피~" 하면서요. 그 사람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면서 계속 스몰토크를 나누려고 시도했어요. 예전의 저는 아는 단어가 있어도 문장으로 못 만들어서 입을 닫았는데, 이제는 다르더라고요. 영어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습득하는 거라는 것, BYS에서 배운 거예요.

Q. 올해 39살 생일에 특별한 감정이 있으셨다고요.

아이가 색종이 한 장, A4 용지 한 장에 글을 써서 줬는데, 그걸 보는데 문득 이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진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구나. 새벽 5시에 눈을 뜨며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를 물었던 사람이, 이렇게 사랑받고 있구나 싶었어요.

신랑도 저한테 사랑을 알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PT 비용이 걱정됐거든요. 아이들 교육에 먼저 써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신랑이 "PT 받는 돈이 있든 없든 우리 인생에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신랑이 배움에 있어서 굉장히 적극적인 사람이에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이 동기부여를 받아요. 내가 나를 위해 뭔가를 써도 괜찮다는 것, 신랑이 먼저 알려줬어요.

PART 4. 정체성 — 본질을 꿰뚫는 가치 발견자


Q.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선택하셨는데, 혜지 님 이력을 보면 파워블로그, 카메라 악세사리 사업, 케이크 토퍼 판매, 비서 경력까지... 생각해보면 다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었네요.

지금 생각하면 다 마케팅이었는데, 그때는 몰랐어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케이크 토퍼를 찍어서 올리고, 악세사리를 만들어서 팔고. 그게 다 내 것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었던 거잖아요. 요즘도 그래요. BYS 클럽에서 아이들과 영어 그림책을 읽고 있는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돌려줘야 하니까 제가 활동지를 만들었어요. 그걸 블로그에 올리고 인스타로 알려서 공유하려고 했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것도 마케팅이잖아, 나를 브랜딩하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때는 항상 '육아하며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했어요. 나를 위해서라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했고요.

Q. 비서 경력도 마케팅과 연결이 되나요?

비서는 보스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고, 그것을 가장 좋은 형태로 외부에 전달하는 일이에요. 돌이켜보면 마케팅이랑 구조가 똑같아요. 누군가의 본질을 읽고, 세상에 가장 잘 보이는 방식으로 꺼내는 것이거든요. 저는 그걸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 같아요. 그냥 그게 마케팅인 줄 몰랐을 뿐이지.

Q. 생각수업과 50번의 테이크는 마케팅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생각수업이 저에게 '너는 누구냐'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면, 50번의 테이크는 '무엇이 가장 나다운가'를 선별해 내는 마케팅적 훈련이었어요. 50번을 찍는다는 건 단순히 반복하는 게 아니라, 50개의 선택지를 만드는 과정이에요. 다 찍고 나서 영상을 하나하나 돌려보며 '이건 나답지 않아', '이게 진짜 내 모습이야'라고 골라내죠. 마케팅의 핵심도 많은 데이터 중에서 브랜드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 하나를 발굴해 내는 '편집의 감각'이거든요. 나라는 브랜드를 발견하기 위해 50번씩 시도하고 골라내던 그 감각이 근육처럼 쌓였어요. 나를 깊게 들여다보니 이제는 누군가를 보더라도 그 사람만의 고유한 빛이 무엇인지, 어떤 서사를 꺼내 놓아야 할지가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나를 발굴해본 경험이 다른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Q. AI 시대에 마케터로서 어떤 확신을 갖고 계세요?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매일 느끼는 점이 있어요. AI가 논문도 써주고, 초안도 잡아주고, PPT도 만들어주는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내 언어로 직접 전달하는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귀해졌어요. 기술이 준비를 도와줄 순 있어도, 결정적인 순간 무대 위에 서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나의 언어거든요. AI 뒤에 숨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도구 삼아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국제학회 발표는 어떻게 결심하셨어요?

교수님이 학회 참석을 제안해 주셨을 때, BYS 이전이었으면 해외 학회는 제 인생에 없는 일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매주 1분 스피치를 해왔잖아요. '10분이면 위클리 트레이닝 10개다, 한번 해보자' 싶었어요. 10분 스크립트를 전부 외워서 발표했고, 에디터 두 분의 질문도 받았어요. 에디터들이 흥미를 갖고 질문해 주는 게 발표를 잘했다는 표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교수님도 "발표 너무 잘했다, 스페인 학회도 가보자"고 제안해 주셨어요. 지금 7월 스페인 학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PART 5. 연대 - 누군가의 알 곁에서 함께 쪼다


Q. BYS 직원 제안을 받으셨을 때 어떠셨나요?

CEO의 책장 클럽 수업 끝나갈 무렵에 대표님이 제안을 주셨어요. BYS는 1년 동안 너무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좋아하던 곳이라, 10초 정도 고민하다가 대학원 수업을 줄여서라도 하겠다고 했어요. 이력서를 정성껏 써서 드렸는데, 대표님이 "저는 지금까지 직원들의 이력서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BYS 교재에 이런 내용이 있거든요. "BYS에서 트레이너를 뽑을 때, 우리는 화려한 언변을 보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의 성실함을 관찰하고 매일 제출하는 과제를 평가합니다." 빈말이 아닌 삶으로 살아냈던 저의 1년, 그 성실함을 보고 선택해 주신 거죠.

Q. BYS 클럽에서 직접 커뮤니티도 두 개 운영하신다고요.

'Eat Mate'랑 '함께 올림'이에요.
’Eat Mate’는 식단·건강 루틴 모임인데요, 저희 친정엄마가 40대 초반에 암에 걸리셨었거든요. 지금은 나으셨는데, 저는 엄마를 너무 많이 닮아서 그때부터 건강이 좀 신경 쓰이더라고요. 내년이면 마흔이기도 하고요. 바디프로필 찍으면서 식단 관리를 해봤는데, 혼자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흐트러지더라고요.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인데, 다 같이 건강하게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만들었어요.
’함께 올림’은 나의 서사를 기록하는 모임이에요. 저는 잘해서 올리는 게 아니거든요. 나중에 이불킥할 것 같다 하면서도 올려요. 제가 영어를 잘하게 됐을 때 그걸 보여주려면, 못했던 모습이 먼저 있어야 되잖아요. 그 서사를 같이 쌓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BYS에는 잔잔한 분들이 많은데, 용기를 못 내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제 부끄러운 기록이 누군가에게 시작할 용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분들한테 첫 발걸음이 될 수 있으면 좋겠고, 제 이야기가 그냥 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 것 같아서 좋아요.

PART 6. 앞으로 — Essence Discoverer 최혜지


Q. 대학원, 학회, 직원까지. BYS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요?

BYS에 오기 전에도 대학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런데 면접 전날까지 갈지 말지 고민했거든요. 선생님이 "혜지 님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계속 에너지를 주셨어요. 그 말이 저를 밀었어요. 누군가 내 안의 빛을 알아봐 줬기 때문에, 저도 알을 깰 수 있었어요.

Q. 4~5년 뒤 안식년을 떠나는 혜지 님은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4~5년 뒤에 제가 영어를 얼마나 잘하게 될지, 그게 요즘 진짜 기대돼요. 2024년 6월에 브런치에 처음 쓴 글 제목이 "남편은 국립대 교수가 되었고 나는 애엄마가 되었다"였어요. 2026년 3월엔 공부도 하고 직장도 다니는 엄마가 됐고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계속 젖어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어디까지 와 있을지, 그게 너무 기대돼요. 가장 빛날 나의 40대, 기다려라.

Q. 혜지 님에게 BYS란 무엇인가요?

동행이에요. 혼자가 아니다, 라고 끊임없이 알려주는 곳이에요. 과정 그대로를 응원해 주고 괜찮다고 해주는 곳이요.

그리고 마케팅 관점으로 BYS를 풀어보자면, 저한테 BYS는 고관여예요. 비용도 들고, 매일 트레이닝도 해야 하고, 관계도 가져야 되니까 쉽지 않아요. 근데 그렇기 때문에 성장의 강도가 달라요. 원데이 클래스는 저관여잖아요.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는 거니까요. BYS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성장이 아니라, 나만의 그래프가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 곳이에요. 스픽 같은 앱은 나 혼자 하는 거지만, BYS는 관계를 가져야 되거든요. 그게 이 둘의 차이인 것 같아요.

Q. BYS 직원으로서 그 역할은 어떤 모습일까요?

마케팅의 본질은 가치 없어 보이는 것에서 본연의 가치를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에요. 저는 저 자신을 발굴해 본 경험이 있기에, 이제 다른 멤버들의 서사 속에 숨겨진 빛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싶어요. 차분하고 조용한 분들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페이스메이커 같은 트레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Q. BYS의 브랜드 무드와 혜지 님의 유머러스한 성격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가 기대됩니다. 인터뷰 중 언급하신 '스티커' 비유가 인상적이었어요.

BYS는 정말 예쁘고 깔끔하죠. 마치 애플이나 무인양품처럼 세련되고 절제된 무채색의 매력이 있어요. 저는 그 무채색 위에 '키티 스티커'를 하나 툭, 붙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이 "웃기다"라는 말이거든요. 무채색의 공간에 분홍색 키티 스티커 하나가 붙으면 갑자기 유쾌한 에너지가 돌잖아요? 저는 BYS의  브랜드 정체성을 사랑하고 존중하면서도, 우리 멤버들이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유쾌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저만의 색깔을 더하고 싶습니다.

Q. 무채색 위에 붙은 분홍색 스티커라니, 혜지 님 다운 발상이네요.

공부도 성장도 결국 삶의 일부잖아요. 비장하면 금방 지칠 때가 있어요. 저는 멤버들의 장점을 발굴해서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성장하는 과정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는 마케터가 되고 싶어요. BYS라는 멋진 도화지 위에 제가 붙일 '스티커'들이 어떤 그림을 만들어갈지 저도 참 기대됩니다.

Q. 지금 새벽 5시에 눈을 뜨며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를 묻고 있는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저도 그 새벽에 있었어요. 아무 정답도 안 나왔고요. 그런데 그 새벽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여기 없었을 거예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게 있는데 어디를 가리키는지 모르겠다면, 이미 절반은 온 거예요. 그 모호함이 알 껍데기가 안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는 신호거든요. 혼자 쪼아가는 게 막막하다면, 먼저 알을 깨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오세요. 당신 안의 빛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혜지 님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발굴자(The Discoverer)’요. 마음에 드는 단어가 없어서 AI한테 저를 표현해달라고 했는데, '발굴자'라고 하더라고요. 발굴자라고 하니까 약간 포크레인 같은 거예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발굴자가 딱인 것 같아요. 저 자신도 발굴해왔고, 다른 사람한테도 좋은 점을 발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무언가에서 가치를 꺼내서 보여주는 게 마케팅이라면, 저는 사람들과 그 과정을 나누고 싶어요. 당신에게도 고유한 빛이 있으니, 우리 함께 그 빛을 발견해보자고요.


EPILOQUE


나의 빛을 발굴하여 누군가의 빛을 발견하는, Essence Discoverer 최혜지 

새벽 5시에 눈을 뜨며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를 물었던 사람이 있었다.

알 껍데기 안에서 오래 웅크렸고, 오래 쪼았고, 오래 기다렸다.

그 기나긴 시간을 거치며 그녀는 깨달았다.

“내가 찾아 헤매던 정답은 바깥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내 안에 솟아나는 것들이 나를 반짝이는 빛이라는 사실을.”

이제 그녀는 그 빛으로 다른 사람의 알을 비추며, 당신 곁에 나란히 앉아 있다.

당신 안의 숨겨진 빛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세상 밖으로 꺼내줄 '본질 발굴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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