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diant Designer — Shaper of essence, reflector of happiness
PROLOGUE: 빛을 준비하는 사유의 토양
우리는 흔히 디자이너를 '화려한 외형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가장 감각적인 선과 색을 다루는 이들에게 세상은 늘 눈부신 결과물만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 영국, 그리고 중국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거쳐온 디자이너 유상민의 시선은 화려함이 아닌, 가장 깊숙한 곳의 '본질'을 향해 있었습니다.
조직의 정점에서 내려와 홀로서기를 선택한 그는 자신을 '대표' 대신 '디자이너'라 부릅니다. 매일 아침 하얀 종이 위에 직선과 원을 그리며 아날로그의 루틴으로 손끝의 감각을 깨우고, 텍스트의 행간을 읽으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그에게 디자인이란 단순히 모니터 앞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닙니다. 매일 묵묵히 쌓아 올린 루틴과 사유라는 토양 위에서 피어나는 정직한 결과물입니다.
이 인터뷰는 세상의 기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을 지켜낸 한 디자이너의 치열한 기록이자, 삶의 오춘기를 거쳐 마침내 주체적인 행복을 찾아낸 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거대해지려 애쓰던 '거인'의 단계를 지나, 이제는 스스로 행복해짐으로써 주변을 은은하게 비추기 시작한 사람. 본질을 빚어내고 행복을 비추는 '레디언트 디자이너(The Radiant Designer)', 유상민의 빛나는 여정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Part 1. 본질을 길러내기 위한 매일의 루틴과 사유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최적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죠. 그런 면에서 행간을 읽으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독서와 글쓰기는, 디자인 결과물의 깊이를 더해주는 토대가 되어줍니다.
한국에서의 실무 6년, 29세에 떠난 영국 유학, 그리고 치열한 고용 생태계를 가진 중국에서의 13년. 조직의 정점에서 내려와 홀로 서기를 선택한 지금. 디자이너 유상민은 스스로를 '디자이너'이자 '운영자'로 명명한다. 이 긴 여정 속에서 그는 매일 아침 흰 종이 위에 직선과 원을 그어왔다. 디지털이 대신할 수 없는 손끝의 감각. 그 아날로그의 정직한 루틴에서 그의 하루가 시작된다. 책의 행간을 읽으며 자신의 삶으로 가져와 곱씹는 사유의 태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가 매일 쌓아 올리는 루틴과 사유는 자신의 본질을 길러내는 토양이 된다. 그가 추구하는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디자인의 본질은 바로 이 매일의 시간에서 자라난다.
Q1. 한국에서 6년, 영국 유학, 그리고 중국에서 네 군데의 기업을 거쳐 현재 1인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일대기를 걸어오셨습니다. 디자이너 유상민의 역사를 간략히 짚어주신다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첫 직장에 입사해 6년 정도 실무를 쌓았습니다. 그러던 중 '영어'의 중요성을 느끼는 사건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일본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높게 평가받던 시절이었어요. 일본 소니(SONY) 사장님을 고문으로 모시고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당연히 우리 팀장이 발표할 줄 알았는데, 영어가 유창한 유학파 선배가 대신 단상에 오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아, 영어를 못하면 디자이너로서 내 입지가 위험해지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고, 29살이라는 나이에 영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고 나서도 영어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기는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 주변 국가에서 직장을 구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기회를 찾던 중 중국에서 첫 회사를 잡게 되었죠. 미국 오디오 회사였는데, 마침 중국 현지에 디자인 팀을 세우는 과정에 제가 합류하게 된 거예요. 그곳을 시작으로 저의 중국 생활이 시작됐죠. 중국에서는 총 네 군데의 회사를 거쳤습니다. 한국은 입사하면 보통 정년이 보장되는 고용 문화가 있지만, 중국은 '3년 계약직' 시스템입니다. 3년, 또 3년 계약을 갱신하다가 세 번째 계약에 이르러야 중국인들은 영구 계약(Permanent)으로 전환되고, 외국인 근로자들은 3년, 3년, 5년 단위로 계약을 이어갑니다. (저의 마지막 회사 시스템은 이러했습니다). 이런 환경을 처음 겪다 보니, 계약 만료인 3년이 도래하기 전, 불안한 마음에 여러 회사들에 입사 지원을 하다 보니, 북경에서 2년, 상해에서 1년 반의 생활을 거쳐 다시 심천까지 오게 되었고, 마지막 회사에서는 Senior Design Director로 7년 반 정도 일을 했죠. 그러다가 2024년 8월, 긴 조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독립해 제 개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걸어온 저의 디자인 여정입니다.
Q2. 블로그에 "나는 그냥 1인 스튜디오 운영자다"라고 적으셨어요. '대표'가 아니라 '운영자'라는 단어를 고르신 이유가 있을까요?
'대표'라는 호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요(웃음). 지금 저는 디자인부터 영업,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감당하는 진짜 '1인 스튜디오'거든요. 그래서 저는 굳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제가 부르기 편하고 듣기 편한 호칭이 제일 좋더라고요. 그래서 누군가 제 직업을 물을 땐 그냥 '디자이너'라고 소개하는 게 가장 마음 편합니다. 다만, 현재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며 사용하는 공식 명함에는 'Co-Founder(공동 창립자)'라는 직함을 적어두긴 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파트너 친구가 한 명 있거든요. 그 친구가 스튜디오에 100% 올인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서, 제 포지션을 'Co-Founder 겸 디자인 디렉터'로 명시해 두었습니다. 직함이 어떻게 변하든, 제가 살아온 삶의 역할 중 큰 본질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Q3. 매일 아침 본격적인 작업 전에 핸드 스케치 그리시는 걸 업로드해 주시더라고요. 왜 디지털이 아니라 손으로 시작하시는 걸까요?
가수가 무대에 오르기 전 목을 푸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기 전, '손을 푸는 루틴'인 셈이죠. 하얀 종이 위에 직선과 원을 그리다 보면 기분이 차분하게 정돈됩니다. 이 습관은 대학교 때 자동차 디자인을 배우면서 직선과 원을 그리는 기본기를 훈련하면서부터 지켜온 저의 오래된 루틴이에요. 회사 다닐 때도 출근하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종이에 동그라미들을 잔뜩 그리며 손 감각을 깨운 뒤에 일과를 시작했거든요. 그래야 스케치의 감이 유지되기 때문에 독립한 지금도 거르지 않고 이어가고 있어요.
디지털이라. 사실 태블릿으로 스케치를 해보려고 여러 번 노력을 해봤는데, 손으로 직접 그리는 그 맛이 안 살더라구요. 저는 아날로그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웃음).
Q4. 디자인뿐만 아니라 책도 많이 읽으시죠. 사유를 적은 글들도 많고요. 시각을 다루는 디자이너로서 독서와 글쓰기라는 텍스트의 영역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자'는 다짐의 발현에 가깝습니다. 사실 학창 시절에는 공부와 거리가 멀었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계발서를 읽다가 고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고전 문학에 꽂히기도 했죠. 1년에 300권 읽기라는 도전을 해보기도 했어요.
그러다 2021년, 코로나19 초기에 제 인생을 흔드는 변화의 시점이 찾아왔어요. 고립된 환경 속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타성 가득하게 살 수는 없다, 정말 바뀌어야겠다'는 강한 각성이 일어났죠. 그 뒤로는 더 꾸준하게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독서를 통해 다른 사람의 시각을 빌려 곱씹으며 제 삶의 답을 찾아가고, '내가 지금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하고 자문하며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독서의 영역을 디자인과 연결 지어 본다면 결국 제품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제가 제품을 디자인하는 주된 목적은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거든요.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최적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죠. 그런 면에서 행간을 읽으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독서와 글쓰기는, 디자인 결과물의 깊이를 더해주는 토대가 되어줍니다.
Part 2. 전문가로서의 태도, 본질을 돕는 대화
클라이언트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으로 도와드리는 것. 그것이 제가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주체적인 삶을 향한 그의 갈망은 안정된 조직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했다.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자유, 결이 맞지 않으면 정중히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 그것이 그가 1인 스튜디오에서 찾은 가장 큰 행복이다. 그러나 홀로 선다는 것은 곧 클라이언트를 마주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그는 '설득'이라는 단어 대신 '돕는다'는 태도를 택했다. '내 디자인을 관철하겠다'는 고집을 내려놓고 '이 사람의 사업이 성공하도록 디자이너로서 돕겠다'는 마음으로 중심을 옮긴 것. 거대하게 밀어붙이던 바람의 자리가, 곁에서 함께 빛나는 태도로 바뀌어 가는 첫 장면이다.
Q5. 회사에 계속 다니시다가 중국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하실 때, "남들의 결정을 기다리기 싫어서, 나의 디자인을 좋아하는 클라이언트와 일하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쓰셨어요. 그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코로나19 시기, 처음에는 눈앞에 마주한 가족들을 보며 '패시브 인컴(Passive income)'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하고, 독서를 하고, 스마트 스토어나 유튜브 같은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았죠. 그렇게 스스로 일상의 중심을 잡아가며 시각화를 많이 하다 보니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진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을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코로나가 끝난 뒤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서도 고민은 계속되었어요. 약 1년 반에서 2년 동안, 거의 매일 출퇴근길에, 점심시간에는 자전거를 타며 오디오 북을 듣고 끊임없이 자문했어요. 정말 답답할 때는 블로그에 셀프Q&A를 하면서 대화를 했어요. 일종의 '오춘기'였죠.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삶의 주인이 되려면 '디자인의 모든 결정을 내가 온전히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23년 12월, 회사를 다니면서 언젠가 쓰이겠다는 생각으로 중국에서 개인 사업증을 미리 준비했어요. 일종의 포석이었죠. 그러다 2024년 8월, 회사의 사장님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퇴사 권고를 받았어요. 사업자 준비까지 한 저의 마음가짐이 퇴사를 불러오는 결과를 만들었지만 미리 준비해 둔 개인 사업증과 주변의 큰 도움으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한두 달 만에 빠르게 대처하고 스튜디오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Q6. 조직에 계셨을 때와 지금 홀로 하시는 지금,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모든 결정을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디자인 계약의 금액을 떠나서 제가 원하는 클라이언트와 일할 수 있고, 큰 돈을 준다고 해도 결이 맞지 않으면 정중히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이 생겼습니다. 이 선택의 자유가 제게는 아주 큰 행복이에요. 다른 하나는 행동과 대화에 많은 차이가 있어요. 조직의 직원으로 들어가면 관계가 수직적인 상하 관계로 고착되기 쉽지만, 협업을 하게 되면 클라이언트분들이 저의 의견을 듣는 자세부터 다릅니다. 마지막 결정을 떠나서, 저의 의견을 집중에서 들으려는 (그게 저를 평가하려는 것일지언정) 자세가 눈에 보이거든요. 저의 선배 중 한 기업의 디자인 센터를 이끄는 분이 있는데, 그 선배는 "나는 이 디자인 팀이 내 회사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사장 말을 듣는 게 아니고 사장단들에게 내 생각을 설득한다고 생각하고 일해~"라고 하더라고요. 책임감 있는 훌륭한 마인드이고 충분히 이해도 되지만, 희한하게 저에겐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구요. 결국은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구조이니까요. 그 선배의 주체적인 마인드도 존중하지만 저는 제가 주체적으로 살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는 저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죠.
Q7. BYS에서 영어 훈련, BYS CLUB, BE FREE, 서포터즈까지 많은 활동에 참여하고 계세요. 그중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이 있을까요?
참여하는 모든 활동이 다 의미가 깊지만, 제 마음에 가장 좋은 건 그냥 BYS(Be Your English)인 것 같아요. 비프리(BE FREE)도 좋고 CEO 책방도 다 좋지만, 그래도 BYS 숙제를 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아요.
지금 3학기째 수강 중인데, 영어 데일리 트레이닝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어요.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호텔에서 일찍 일어나 데일리 트레이닝을 했어요(웃음). 이건 제가 스스로 다짐한 저 자신과의 약속이에요. 처음에 'BYS가 이런 곳이구나'라는 걸 알고 나서는, '그럼 나는 일주일에 7일 내내 해야겠다' 하고 스스로 약속했죠. 제가 삶을 살아가는 결이 BYS의 시스템과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삶의 페이스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일부러 루틴이나 숙제를 빡빡하게 세워 놓고 그 것들을 하나하나 해나가거든요.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나가려는 저를, 매일 규칙적으로 사유하고 스스로를 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BYS의 시스템이 참 좋아요.
Q8. BYS 모토가 '영어로 나를 브랜딩하다'라는 슬로건이잖아요. 디자이너로서 봤을 때 어떤 의미로 다가오셨어요?
처음 BYS를 접했을 때 느꼈던 건 '여기 우리가 흔히 아는 다른 영어 학원과는 많이 다르다'는 신선함이었습니다. 생각수업(Thinking Class)에서 오는 콘텐츠들을 보면서, 그동안 제가 책에서 읽고 봐왔던 가치관들과 결이 같다고 느꼈습니다. '여기 참여하다 보면 영어뿐만 아니라 내 생각 정리도 같이할 수 있겠다' 싶었죠. 사실 저는 브랜딩 로고나 홈페이지를 꼼꼼히 찾아보고 합류한 케이스는 아니에요. 아내가 먼저 BYS를 듣고 제게 추천해 주었기에,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잘 알고 있었죠. 나중에 슬로건을 보고 나서야 '이래서 수업을 이렇게 깊이 있게 진행하시는구나' 하고 온전히 이해했습니다. 다니엘 대표님도 늘 말씀하시듯, 영어를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잖아요. 나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각수업이 가진 본질적인 밸류가 디자이너인 제게도 굉장히 크게 와닿았습니다.
Q9. 1인 스튜디오 운영자이자 Co-Founder이시기 때문에 비대면으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셔야 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상민님만의 대화의 기술이 있을까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제일 못하고 힘들어하는 게 바로 '디자인 설득'입니다. 디자인 전략 차원에서 "우리의 거시적인 디자인 방향은 이렇게 가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릴때는 대부분은 수긍을 하시는데, 눈앞의 시각적인 이미지들을 놓고 디자인 자체를 설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아요. 저에게 의뢰를 하셨지만, 결국은 이미 마음속에 답이 있으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으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보통 디자인을 선택하는 미팅 테이블에 보통 세 가지 선택지를 들고 나갑니다. 사장님이 원하는 방향 하나, 저의 관점에서 클라이언트의 사업을 고려해서 나온 방향 하나, 그리고 그 중간 지점에 조율해 놓은 타협안 하나. 이렇게 3개 정도를 보여드리죠.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제가 제안한 디자인이 더 신선하고 예쁘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최종 사업적인 부분이나 리스크까지 모두 고려하면 결국 디자인 결정이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으로 많이 돌아서곤 해요.
그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계속해서 제안하는 것입니다. "대표님, 이렇게 결정하시는 것도 맞지만 시장에서 확실한 임팩트를 주시고자 하면 원래의 목적대로 이 디자인이 더 좋습니다"라고 전문가로서 의견을 내는 것이죠. 회사에 다닐 때는 위에서 "야, 이거로 가자" 하면 그대로 따라야 했지만, 여기서는 적어도 파트너로서 제 목소리를 더 얘기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디자인이 맞습니다"라는 제 관점을 지속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죠. 1년 반 동안 직접 많은 클라이언트들과 일하면서 바뀐 점이 있다면, 프로젝트를 대하는 마인드인것 같아요. '내가 고민해서 만든 디자인을 꼭 설득하고 관철해야지'라는 아집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 클라이언트가 좋은 제품을 세상에 만들 수 있도록, 그래서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내 감각으로 최대한 도와드려야지'라고 생각하며 일합니다. 그렇게 중심을 바꾸고 나니, 요구 조건이 많아지거나 수정이 반복되는 상황이 와도 불평하기보다는 '그래. 이것도 한 번 더 도와드리자.' 이렇게 생각하고 일하고 있어요. 클라이언트의 사업을 도와드리고 디자이너로서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클라이언트들을 대하는 저의 태도에요.
Part 3. 거인 같은 바람에서 빛을 발하는 레디언트로
스스로가 거대해지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한때 그는 세상의 모든 역할을 집어삼킬 듯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거인'이 되고자 했다. 마치 이솝 우화의 해와 바람처럼 그는 거인이 되어 세상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다. 그것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 세차게 몰아치던 거센 '바람'과도 같았다. 그러나 투쟁하듯 주체성을 증명하려던 그 시기는 이제 그가 지나온 과거가 되었다. 이제 그는 안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빛의 가치를 안다. 주체적인 루틴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것, 그리고 내 디자인과 감각으로 누군가를 돕겠다는 선한 마음을 품는 것. 그 단단한 결심들이 모일 때 내면의 사유는 비로소 나그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빛이 되어 발산된다. 거인의 입김 같은 바람이 아닌 빛의 스며듦을 선택한, '레디언트(Radiant)'가 된 한 디자이너의 사유를 마주해 본다.
Q10. 인스타그램 피드 프롤로그에 산업 디자이너와 브랜드 디자이너, 두 가지 정체성을 함께 적어주셨습니다. 그 개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산업 디자이너는 눈에 보이는 제품과 하드웨어에 관련된 전반의 요소를 고려해서 사용하기 좋은 제품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구요. 브랜드 디자이너는 어떤 브랜드나 클라이언트가 추구하고자 방향성에 맞춰 새로운 로고를 설계하고, 고유한 컬러를 정하며, 브랜드의 시각적 정체성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제 전공이 시각 디자인은 아니라서 디테일하게 파고들기는 힘들지만, 예전에 클라이언트들을 만날 때, 이 비즈니스를 본질적으로 돕기 위해 "지금 가지고 계신 브랜드의 로고를 제품군에 맞춰 이런 식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을 했던 경험을 여러 번 했었어요.
브랜딩과 제품 디자인은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브랜드 디자인은 '시장 안에서 내가 가질 포지션을 명확히 정의하는 일', 즉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정하는 일이고, 제품 디자인은 '그 포지션에 맞추어 알맞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 즉 "어떤 행동으로 나를 표현할 것인가"입니다. 예를 들어 BMW와 아우디, 메르세데스, 벤츠 각 브랜드에서 가장 비싼 차량을 비교하자면, 가격이나 차량의 크기, 기능적인 스펙이 거의 비슷하지만 디자인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이유는 각자가 지향하는 브랜드 포지션이 다르기 때문에 그 브랜드를 표현하는 것에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BMW는 '다이내믹 드라이빙(Dynamic Driving)'이 슬로건이기에 외관이 근육질처럼 탄탄하고 역동적입니다. 아우디는 '스마트 드라이빙(Smart Driving)'을 추구하여 엣지가 살아있고 헤드라이트 역시 미래지향적이죠. 벤츠는 '럭셔리와 프리미엄, 엘레강스'를 대변하기에 선이 유려하고 곡선미가 흐릅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장 직관적인 제품의 형태로 치환해 내는 것, 그것이 브랜드 디자인과 제품 디자인이 만나 일으키는 시너지입니다.
Q11. 블로그 카테고리를 보면 디자인 거인, 스토리 거인, 아빠 거인처럼 '거인'이라는 단어로 명명되어 있더라고요. 내 삶의 모든 역할을 거인으로 묶어야겠다고 다짐하셨던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거인’이라는 컨셉으로 저의 큰 꿈을 이루려는 생각에서 만든 이름이었어요. ‘거인 컴퍼니’라는 모 회사 아래, ‘디자인 거인’ ‘커피 거인’ ‘독서 거인’ 등등을 하나의 브랜드 아래 묶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내 삶의 모든 역할을 거인이라는 키워드로 묶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주체성을 확립하려던 시기의 흔적이에요. 아빠 거인, 육아 거인이라고 명명한 블로그의 작은 섹션들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나온, 저를 브랜딩하려 했던 과정인 거죠. 지금은 제 내면의 가치관이 조금 발전했습니다. BYS를 들으면서 그리고 사유하면서, 저를 정의하는 단어가 '거인'에서 '레디언트(Radiant, 빛나는)'로 재정의했어요. 스스로가 거대해지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제 삶의 지향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빛이 나는 찬양자, 빛이 나는 아빠, 빛이 나는 남편, 빛이 나는 디자이너, 그리고 빛이 나는 기업가. '레디언트'가 지금의 제가 추구하는 삶과 디자인의 본질입니다.
Part 4. 본질을 투영하는 디자인, 리플렉션(Reflection)
리플렉션(Reflection)이라는 단어는 '내가 하는 디자인은 진실된 디자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어요.
'리플렉션(Reflection)'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맑은 얼굴이 있다. 하나는 빛이 물체에 부딪쳐 제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내는 시각적 '반사'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내면과 지나온 경험을 되짚어보는 정신적 '성찰'이다. 거인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스스로 빛을 발하는 레디언트(Radiant)가 된 그가 도출해 낸 디자인 언어가 '리플렉션'인 것은 필연적이다. 매일 아침 주체적인 루틴과 사유로 내면을 숙고(Reflection)해 온 시간들이, 이제 정직하고 순수한 재료의 표면 위로 본질을 투영(Reflection)하는 디자인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Q12. 자동차 스케치마다 'Boxy. Edged. Reflection.' 태그를 다세요. 이 세 단어를 함께 두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현재 진행 중인 개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디자이너 유상민'으로서 고유한 디자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저만의 디자인 언어를 자동차 디자인에 접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스쳤어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클라이언트들과 협업을 하면서 저의 색깔이 드러나는 작업물을 만들어가지만 저의 색깔을 100% 보여준다고 말하기는 어렵죠. 그래서 '100% 저의 색깔이 온전히 담긴 디자인을 하나 쯤 만들어보는 것'도 디자이너로서 좋은 작업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금속의 볼록함과 오목함, 그 곡면을 통해 형태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연구 중입니다.
Q13. 세 단어 중에서도 'Reflection'이라는 단어가 특히 궁금했어요. 상민님께 이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리플렉션(Reflection)이라는 단어는 '내가 하는 디자인은 진실된 디자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어요. 재료를 다루더라도 진짜 나무(Real Wood)나 진짜 금속(Real Metal)처럼, 소재 자체가 가진 고유의 정직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탈이라는 순수한 소재 안에서 이 진실함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금속의 표면이 주변을 비추어내는 '리플렉션(Reflection)'은 사물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투영한다는 점에서 제가 추구하는 삶과 디자인의 태도와 닮아있습니다. 아직은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는 단계이지만, 이 리플렉션을 중심축 삼아 나만의 컬렉션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손에 쥐는 숟가락과 젓가락 같은 수저 세트부터 시작해, 식기류나 주방 기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일관된 스트림(Stream)으로 관통하는 메탈 리플렉션 컬렉션을 완성해 보고 싶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진실한 본질을 금속의 표면에 비춰내고 싶습니다.
Part 5. BondClip — 덜어냄과 쓰임의 미학
피플(People)을 통해 트렌드를 읽고, 유저(User)를 통해 제품의 니즈를 보며, 커스터머(Customer)를 통해 브랜드의 지향점을 파악합니다. 이 세가지 키워드의 관찰 끝에 군더더기는 자연스럽게 덜어집니다.
전문가는 일상의 아주 사소한 불편함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마우스를 '쥐는 도구'에서 '노트북 가장자리에 부착되는 사물'로 위치를 옮겨 놓은 제품, 본드클립(BondClip). 포브스와 디자인붐이 주목한 이 미니멀한 제품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다. 사람과 유저, 그리고 커스터머를 관찰하며 '사용성'이라는 본질을 남기고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낸 디자이너 유상민의 신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Q14. BondClip은 마우스를 '쥐는 도구'에서 '노트북 가장자리에 부착되는 사물'로 위치를 옮긴 제품이에요. 이 발상이 처음 떠오른 순간이 언제였나요?
그냥 평범한 일상생활 중에서 시작됐습니다. 회사에서 미팅하러 움직일 때마다 노트북 위에 마우스를 올려놓으면 쉽게 떨어지고, 그렇다고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 볼록해지는 게 불편하더라고요. 누구나 겪는 간단한 문제이지만, 이걸 디자인으로 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우스라는 사물은 내부 공간에 빈 곳이 되게 많아요. 복잡한 기구물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버튼 3개, PCBA 보드 하나, 센서 하나, 그리고 배터리 정도면 메커니즘이 끝나거든요. '그렇다면 이 남는 공간을 다르게 이용해 볼 수 없을까' 싶어서 친구와 함께 디자인을 했습니다. 디자인을 완성하고 '우리끼리 어떻게 양산을 해보자' 했는데, 다른 회사 분들이 저희 디자인을 보시고는 "양산은 우리가 할 테니, 같이 만들어서 팔아봅시다"라며 손을 내밀어 주셨죠. 덕분에 일이 잘 풀려 지금은 출시 준비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Q15. 한 장의 시트 메탈로 매끈하게 G자 절곡으로 된 굉장히 미니멀한 디자인이잖아요. '여기에 선 하나만 더 넣으면, 기능 하나만 더 더하면 예쁠 텐데' 하는 유혹은 없으셨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편이라, 사물이 존재해야 하는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어떤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을 시작할 때 저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에 둡니다. 바로 피플(People), 유저(User), 커스터머(Customer)입니다. 사람을 관찰하면서 트렌드를 읽고, 유저를 관찰하면서 제품의 니즈를 보며, 커스터머를 관찰하면서 브랜드의 지향점을 파악하는 거죠. 이 관찰 속에서 발견되는 모든 니즈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는 디자인보다 '사용성'을 가장 먼저 들여다봐요. '이걸 어떻게 해야 사용자가 가장 직관적이고 쉽게 쓸 수 있을까.' 그 본질을 두고 형태를 다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군더더기가 덜어지더라고요. 화려하게 꾸미는 디자인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제 성향 자체가 단순하면서도 구조적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할 것만 하는, 제 할 일을 수행하는 단순한 디자인이요.
Q16. BondClip이 Forbes와 designboom에 실렸어요. 외신이 이 제품의 어떤 지점에 반응했다고 보시나요? 그게 상민님이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두셨던 부분과 일치했는지도 궁금합니다.
디자인붐(designboom)이나 얀코 디자인(Yanko Design) 같은 매체들은 특이하고 신선한 디자인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곳이라, 그런 부분 덕분에 소개된 것 같습니다. 포브스(Forbes) 역시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어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출시했던 평평했다가 꺾어 들어가는 마우스와 본질은 같거든요. '휴대성'을 발전시킨 디자인의 맥락은 동일한데, 다만 본드클립은 노트북에 결착되는 구조적 특이점이 있기에 매체에 실리게 된 것 같습니다.
매체들이 남긴 코멘트를 읽어보니, '사람들이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불편함을 포착해 내고, 그것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해결해 준 디자인'이라는 평이었습니다. 정확히 읽어내주어서 감사하죠.
진짜 머티리얼을 사용하고 싶어서 메탈(금속) 소재를 사용한 것도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습니다. 헤어라인 디테일이 들어가 고급감이 묻어나는 블랙 버전, 그리고 깔끔한 화이트와 실버 버전이 준비되어 있어 애플 유저나 태블릿 유저들이 자신의 기기와 이질감 없이 매칭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입니다.
Part 6.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리플렉션 디자인
그림으로 아이들과 대화하고, 함께 놀아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불편 사항이 저의 하나의 목표가 되어 진행하고 있는 개인 프로젝트가 있어요.
유상민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이란 일상 속의 영역에 속해 있다. 어린 자녀의 낙서 속에서 아이가 강조하고 싶었던 컨셉을 포착해 내고, 아내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 변기 연구에 몰두한다. 대화와 관계 속에서 본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디자인 언어인 '리플렉션(Reflection)'으로 투영한다. 그래서 그의 메탈릭한 금속 디자인은 차갑지 않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군더더기를 비워내고 진실만을 투명하게 남기려는 한 디자이너의 프로젝트 여정을 따라가 본다.
Q17. 아드님의 첫 자동차 그림을 BMW 콘셉트 스케치로 재탄생시키셨어요. 아드님의 그림에서 "이건 살려봐야겠다" 싶었던 지점이 어디였나요?
그냥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워낙 자동차 스케치를 좋아하다 보니 집에서도 늘 무언가를 그리고 있거든요. 그걸 곁에서 보던 아이들이 가끔 "난 아빠처럼 멋지게 못 그려"라고 말할 때가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쓰였고, '그림을 통해 내 상상을 표현하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아빠, 이 자동차 내가 그린 거야" 하고 스케치북을 내밀었을 때, 제가 "이거 아빠가 이렇게 조금 더 그려볼까?" 하고 아이의 낙서를 바탕으로 그려줘요. 그러다 제가 디테일을 수정하면 아이가 알아차리고 옆에서 말해요. "아니야 아빠, 이 컨셉이 아니지. 나는 여기를 강조했단 말이야" 하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냅니다. 그렇게 제가 발전시킨 스케치를 AI 프로그램으로 동영상까지 만들어 아이에게 보여주었어요. 그 모든 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림으로 아이들과 대화하고, 함께 놀아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Q18. 아드님의 그림을 옮기실 때, 그대로 살린 부분과 디자이너로서 손을 댄 부분의 경계는 어떻게 정하셨나요?
제가 임의로 수정한 부분에 대해 그림을 그린 아이가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더라고요. 그 피드백이 가이드라인이 되어주었습니다. 방금 말한 자동차 스케치를 그린 건 저희 둘째 아이예요. 첫째는 워낙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혼자 파스텔로 그리고 요즘은 비행기에 푹 빠져서 살아요. 반면 둘째는 첫째만큼 그림을 잘 안 그렸고요. 그래서 둘째가 그림판에 그린 그림을 제가 옮겨준 작업이었어요. 아이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을 살리고, 저는 디자이너로서 아이가 상상한 것을 그림으로 구체화해준 거죠.
Q19. BondClip이나 아드님의 그림 사례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디자인적으로 바꾸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으세요?
아이의 아이디어는 아니고 아내의 불편 사항이 저의 하나의 목표가 되어 진행하고 있는 개인 프로젝트가 있어요. 바로 '변기'입니다. 아내가 '남자들은 소변을 볼 때 왜 그렇게 변기 밖으로 물이 많이 튀느냐'며 고충을 토로하더라고요. 그 사소하지만 위생적인 문제를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물이 튀지 않는 변기를 만드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 중 하나가 되었어요. 처음에는 물이 튀지 않는 세라믹 재질로 바꿔보려고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변기의 특성상 소재를 바꾸는 것은 위생과 직결된 문제가 크더라고요. 플라스틱 계열은 균열이 생기면 그 틈으로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 변기를 공부하다 보니 계면 활성 거품을 이용하는 방식이 있더라고요. 변기 물 표면에 촘촘한 거품 층을 형성해 주면, 볼일을 볼 때 냄새를 가두어 줄 뿐만 아니라 물 튐 현상을 방지해 줍니다. 그리고 플러싱(물 내림)을 할 때 거품이 벽면을 한 번 깨끗하게 씻어내려 가며 위생을 유지해 주죠. 실제로 이 구상을 실현해 보려고 공장과 접촉해서 거품을 만들어내는 전용 가루 샘플을 제조해 보았어요. 이론적으로는 작동해요. 다만 복병이 있었는데, 집집마다 설치된 변기 내부의 물 높이가 전부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어떤 변기에서는 효과가 좋은 반면, 물 높이가 구조적으로 낮은 집에서는 효과가 떨어지더라고요. 현재 이 편차를 극복하기 위해 다각도로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변기 프로젝트가 디자이너로서 제 인생의 거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메탈 리플렉션 컬렉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Part 7. 끌려가지 않는 삶, 나만의 시각으로 곱씹는 사유덕구리난, 잘 버티고 있다
책을 읽든 사람을 만나든 '이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를 할지라도, 나는 내 시각으로 이 본질을 다시 보겠다'고 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유연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만의 중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에게 그 기준은 '내가 이것을 하면 행복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받은 만큼'이라는 거래에서 '내 마음이 편안한 만큼의 섬김'이라는 마음 축의 변화. 그것은 '오춘기'라는 자신을 단련해온 오랜 시기를 겪은 뒤 찾아낸 스스로의 답이었다. 책을 읽을 때 그는 저자의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라도 나는 내 시각으로 다시 보겠다'는 태도로 한 번 더 곱씹는다. 무인양품의 '이것으로 충분하다'를 '이것이면 충분하다'로 바꿔 읽어 낸 한 글자의 차이처럼. 끌려가지 않는 삶이란, 타인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유연함이다.
Q20. "받은 만큼 일하자"였는데 이제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자"는 마음으로 디자인하신다고 쓰셨어요.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기억나세요?
'받은 만큼만 일하자'라고 생각하니, 역설적으로 제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무엇보다 그렇게 일하는 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너무 차갑고 건조했달까요.
지금 제 삶의 모든 크고 작은 선택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입니다. '내가 이걸 하면 행복한가?' 하는 질문이죠. 그 기준을 세우고 나니, 오히려 내가 먼저 더 베풀어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을 택하자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예전에 BYS 공동체에서도 한번 나눈 적이 있는 이야기인데, 제게는 '섬김은 쉽고, 사랑은 어렵다'는 나름의 생각을 나눈 적이 있어요. 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무겁고 어렵더라도, 그저 상대를 '섬기겠다'는 결심으로 다가가면 다른 인간 관계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와 업무를 할 때의 제 마음이 한결 편안하더라구요. 행동의 기준을 바꾼 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역시 제 내면의 평화에요. 저는 제 마음이 불편하고 부대끼는 상태를 정말 싫어하거든요. '내 마음이 편안하려면 지금 뭘 해야 하지?'를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먼저 내어주는 선택을 하게 돼요.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참는 건 아니에요. 결을 맞춰 가다가도 '이건 선을 넘었네' 싶은 순간에는 '세이 노(Say no)'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 정도는 내가 기쁜 마음으로 당연히 섬길 수 있지' 싶은 임계점까지는 기꺼이 섬기려고 합니다.
Q21. 디자인을 통해 가족에게, 주변에게, 세상에게 빛이 되려 한다"고 쓰셨어요. '사랑의 마음'에서 '빛이 되는 일'로 표현이 한 발 더 나아갔는데, 이렇게 쓰시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앞선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맥락입니다. 제가 먼저 행복하고 중심이 서 있으니 일상과 삶 전체가 자연스럽게 행복해지더라고요. 다니엘 대표님의 단어를 빌리자면 '충만'의 단계까지는 아닐지라도, 삶에 대한 감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요 근래 제 삶의 가장 큰 화두는 '마음 단련'이에요. 얼마 전 문득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아, 이제 나의 오춘기가 조금 끝난 것 같다' 는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긴 터널을 통과해 오춘기를 졸업하고 나니, 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나의 행복과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일에서도, 가족 관계에서도, 공동체에서도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주변을 섬길 때 결국 가장 행복해지는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완전히 100% 무결한 이타주의자는 아닐지라도, 그 선한 섬김의 순환 안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은 것 같아요. 아마 다음번 육춘기가 찾아올 때쯤에는 '이제 내가 이 사회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22. 무인양품 철학을 인용하시면서 '이것으로 충분하다'와 '이것이면 충분하다'의 차이를 짚어주셨어요. 단지 조사 '으로'와 '이면'의 차이인데, '이것이면 충분하다'의 경지에 도달했던 순간이 있으셨나요?
책이 정립해 둔 의미를 넘어서 저만의 답을 더 깊이 찾고 싶었어요. 처음에 무인양품의 책을 읽었을 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절제의 미학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무언가 타협을 본 듯한, 부족한 만족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한 글자를 바꾼 '이것이면 충분하다'라는 문장이 저한테는 더 꽉 찬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그 철학을 제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한 번 더 해석해 본 거였습니다. 요즘은 독서를 할 때도 이런 사유의 작업을 거치고 있어요. 책을 읽다가 마음에 꽂히는 구절이 있으면, 저자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 삶으로 가져와 곱씹어 봅니다. 남의 생각을 내 것으로 다시 소화해 내는, 저만의 사유 과정을 거쳐보는 거죠.
요즘 책방 클럽에서 함께 읽고 있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도 그런 유연한 시각들을 참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중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어 해석하신 대목이 기억에 남아요. 탕자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 아버지에게 자기 몫을 요구해 독립된 세상으로 나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관점이었죠. 99마리의 양과 길 잃은 1마리 양의 비유도 그렇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르게 보는 관점을 마주하며 '유연성'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배우고 있어요.
"자기 인생은 타인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다"라는 책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유연성'과 정확히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유연성이 없으면 세상의 기준과 타인의 결정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살 수밖에 없거든요. 책을 읽든 사람을 만나든 '이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를 할지라도, 나는 내 시각으로 이 본질을 다시 보겠다'고 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 역시 틀린 게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유연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Part 8. 빛(Radiant)이 머무는 세 가지 시선,
본질을 투영(Reflection)하다
가만히 되짚어보면 그 모든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은 결국 제 내면에 '레디언트'라는 단어를 품었던 때인 것 같아요. '레디언트'로 기억될 수 있다면 디자이너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충만한 삶이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을 움직이는 동력을 묻자 그는 '행복'이라 답했다. 그 단어의 밑바탕에는, 빛이 나는 남편 · 아빠 · 찬양가 · 디자이너 · 기업가라는 다섯 개의 정체성이 놓여 있다. 그 다섯을 빛내기 위해 그는 내면의 행복을 기준으로 모든 선택을 내린다. 그의 디자인 철학인 '피플 · 유저 · 커스터머'가 사람을 향하듯, 그의 삶의 철학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흘러간다. 일상 속 사람들을 향한 그의 세 가지 시선은, ‘리플렉션(Reflection)’을 통해 본질을 발견하고 군더더기 없는 제품이 되어 세상에 행복을 전달한다. 거인이라는 바람을 지나, 리플렉션이라는 과정을 거쳐, 그가 도착한 자리. 스스로가 행복해짐으로써 내면의 빛으로 주변을 비추는 사람. 그것이 바로 '레디언트(Radiant)'다.
Q23. "What is your motivation for your life?" — 상민님이 인스타그램에서 던지셨던 질문을 묻고 싶어요. 당신의 삶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제 대답은 바로 '행복'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행복 찾기'죠. 이렇게만 말하면 참 이기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삶의 가장 깊은 밑바탕에는 앞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빛이 나는 찬양가(Radiant Worshipper), 빛이 나는 남편(Radiant Husband), 빛이 나는 아빠(Radiant Father), 빛이 나는 디자이너(Radiant Designer), 그리고 빛이 나는 기업가(Radiant Entrepreneur). 이 다섯 가지 역할을 이뤄가기 위한 삶이 행복한 삶이 되기 위해 저는 ‘행복’을 선택합니다. 이 정체성들을 지켜나가면서 스스로 불행해지는 길로 걸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나를 이루는 이 소중한 가치들을 빛내기 위해서 저는 내면의 행복을 기준으로 모든 선택을 내리며 나아갑니다. 이것이 제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에요.
Q24. 22년의 내공을 담아 '나의 디자인 철학'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요?
흔들림 없이 가슴에 품어온 세 가지입니다. 피플(People), 유저(User), 커스터머(Customer). 사람을 통해 흐름을 읽고, 유저를 통해 쓰임을 보며, 커스터머를 통해 브랜드의 본질을 짚어내고 싶습니다.
Q25. 그 철학이 디자인 스튜디오를 넘어, 상민님의 일상과 삶에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나요?
제품 디자이너로서 사람, 사용자, 커스터머,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기 편하고, 가지고 싶어하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즉, 저의 제품을 사용하면서 행복을 느끼면 저는 디자이너로서 너무 행복하겠지요. 당연히 그 제품을 디자인하면서 저는 행복하게 디자인 할 것이기에, 제 내면의 행복감이 전달될 수 있다면 너무 꿈만 같을 것 같아요. 삶에 제 행복의 선택이 어느 정도로 작은 부분까지 적용되는지를 말씀드리면, 저의 퇴근, 출근 시간도 저의 행복에 달렸어요. 비가 오는 날 아이들을 학교에 꼭 데려다 주는 행복을 느끼고 싶으면 아이들을 바래다 주고 사무실에 가구요. 바빠도 아이들과 저녁에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 숙제 봐주고 그 후에 야근을 선택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저의 행복이 가족에게 그대로 전달되죠.
Q26. 마지막으로, 세상이 디자이너 유상민을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 기억해 주길 바라시나요?
요즘 교회 공동체 분들이 저를 보며 "요즘 사랑이 많아졌어"라는 따뜻한 이야기들을 자주 건네주십니다. 가만히 되짚어보면 그 모든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은 결국 제 내면에 '레디언트'라는 단어를 품었던 때인 것 같아요. '레디언트'로 기억될 수 있다면 디자이너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충만한 삶이 될 것 같습니다.
EPILOGUE:
내면의 빛이 주변으로 번지는 시간
인터뷰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가 건넨 한마디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돕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주변을 섬길 때, 결국 가장 행복해지는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인 '피플·유저·커스터머'가 사람을 향하듯, 그의 삶의 철학은 가족과 공동체로 흘러갑니다.
디자이너 유상민이 도달한 '리플렉션(Reflection)'의 미학은 거울의 속성과 닮아있습니다. 순수한 금속 표면 위에 가장 먼저 투영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입니다. 비 오는 날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는 출근길, 아내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몰두하는 변기 프로젝트처럼, 그의 디자인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일상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추어 냅니다.
그리고 그 매끄러운 금속 표면을 더 깊숙이 들여다볼 때, 우리는 그 속에서 빛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타인의 목소리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면의 행복을 기준으로 매 순간 주체적인 기쁨을 선택해 온 한 사람의 빛이 사물의 표면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맑은 반사를 마주한 우리 또한 그 빛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비춰 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의 메탈릭한 디자인은 차갑지 않습니다. 매끄러운 표면 속에는 사람의 따뜻한 이야기가 흐르고, 그 속을 들여다보는 우리 모두의 빛나는 얼굴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되어 주변을 비추는 사람. 22년의 치열한 여정 끝에 그는 디자이너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충만한 '레디언트(Radiant)'의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The Radiant Designer: Shaper of essence, reflector of happiness.
그가 세상에 전달할 빛의 순환을 앞으로도 기쁜 마음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