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이름이 자리를 옮길 때, 사명이 시작된다.


엠마(EMMA) 라는 익숙한 네 글자가 Every Mommy Makes Art 라는 문장 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평범한 이름이 예술의 정의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이하연 님은 익숙한 것을 다른 자리에 두고 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발견한 그 시선의 이동 방법에 대해 기록하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받은 사람이 건네는 사람이 되는, 일상의 예술을 잇는 커넥터로서.


Part 1.  재정의 (Redefinition)

엄마라는 노동을 예술의 자리에 두다

그녀에게 예술은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이 아닙니다. 익숙한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 — 그 자체가 예술입니다. 아이를 달래는 말 한마디, 가족을 위한 식사를 만드는 일. 이 모든 평범한 반복을 창조의 과정이라는 자리에 옮기는 순간, 일상은 창조적 예술이 됩니다. 익숙한 것의 자리를 비트는 시선의 이동 Displace, 이것이 바로 일상을 예술로 옮겨 놓는 그녀의 방법입니다.



Q1. Every Mommy Makes Art (E·M·M·A) — 어떤 의미를 담아서 지으셨나요?한국에서 6년, 영국 유학, 그리고 중국에서 네 군데의 기업을 거쳐 현재 1인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일대기를 걸어오셨습니다. 디자이너 유상민의 역사를 간략히 짚어주신다면요?

모든 엄마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아이를 키우고, 하루를 살아내고, 가족을 돌보는 평범한 순간들도 엄마의 사랑과 손길이 더해지면 특별한 작품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의 일상이 반복적이고 지루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반복 속에 가장 깊은 창조성이 있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울 때 달래는 말 한마디, 남은 재료로 가족 식사를 만드는 일, 아이의 그림 한 장을 냉장고에 붙여주는 순간, 지친 하루에도 다시 아이를 안아주는 마음 같은 것들이요. 겉으로 보기엔 작고 평범한 일이지만, 사람을 키우고 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Every Mommy Makes Art”에는 엄마들이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예술가인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삶 속에서 사랑과 분위기, 기억과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Q2. 세월이 흐르면서 그 Art에 관한 정의가 본인 안에서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 하연 님 안에서 Art라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예전의 저는 주로 ‘아름다운 것’ 자체에 끌렸던 것 같아요. 특히 영화가 가진 미학을 정말 좋아했어요.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분위기나 시선이 있다고 느꼈고, 한 장면 한 장면을 분석하면서 볼 정도로 몰입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Art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아름답게 완성된 것을 좋아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것들,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더 예술적이라고 느껴요.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반복적으로 보이는 엄마의 일상도, 다른 시선으로 보면 굉장히 섬세한 창조의 과정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반복되는 하루 안에서도 엄마는 분위기를 만들고,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작은 변화를 통해 그 하루의 감각을 바꾸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저에게 Art는 단순히 ‘예쁜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익숙한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Q3. 본인을 ‘가이드’로 정의하셨습니다. 영웅처럼 정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으로요. 이런 정의가 일상에서 어떤 자유로움을 주거나, 새로운 부담을 가져오기도 하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는 말에 약간의 거리감을 느꼈어요. 정답을 가진 사람이 아래로 전달하는 느낌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환경에서 선생님의 역할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은 AI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받고, 함께 가는 과정 안에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라는 역할이 점점 ‘정답을 주는 사람’보다, 함께 방향을 찾아가고 꾸준히 걸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연결해 주는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껴요. BYS에서 사람들과 함께 영어 루틴을 만들어 가는 경험도 저에게는 그런 의미로 다가왔어요. 가르치는 거는 사실 AI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AI 시대에도 선생님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형태만 바뀔 것 같아요.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동기부여를 주는 사람, 잘 끌고 갈 수 있게 가이드해 주는 사람 — 그게 진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의 역할이 요즘에는 많이 바뀌어야 되는 것 같고, 그렇다면 나도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Q4. ‘정답보다 과정을 믿기로 했다’고 하셨어요. 요즘은 퇴사 성공기나 수익 인증 같은 확실한 결과가 아니라, ‘과정’만으로 엠마라는 브랜드를 구축하면서 불안하지는 않으셨어요? 그 불안을 확신으로 바꾼 순간이 있었나요?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 『Show Your Work』라는 책이었어요. 북클럽으로 만났던 책인데, 저자가 말하는 게 —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는 그 작업을 세상에 보여 주라는 거였어요. 그분이 매일 신문 같은 걸 오려서 페이퍼 아트를 하고, 그걸 매일 공유하면서 ‘내가 하는 게 이런 거야’라는 걸 보여주는 분이거든요. 블로그로 시작해서 인스타그램 계정도 크게 운영하시는데,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표현하는 것 — 그게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짧고 쉬운 원서였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완성되고 성공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 사람들은 그 과정까지 가는 스토리를 보고 싶을 수도 있겠다 — 그런 생각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나의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통로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글을 적게 되었어요. 브런치 사이트에는 밀도 높은 글도 올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브런치라는 매체를 통해 계속 글을 쓰고 있어요.

Part 2. 나만의 출근 (Routine)


안방 화장대 옆, 나를 지키는 30cm 책상

거실도 서재도 아닌 안방 화장대 옆, 30cm 작은 책상. 그녀는 매일 그 작은 책상 앞에서 나만의 출근을 이어가며 매주 한 편의 글을 적었습니다. 「육아휴직중, 돌아갈까? 나아갈까?」라는 주제로 시작된 연재물의 프롤로그는 바로, ‘햇빛 아래 비둘기 한 마리’였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대신, 자신의 공간을 지키며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5살 딸의 역할 놀이 속에 스며든 "엄마는 공부하고 있어" 라는 말은, 가르치지 않아도 매일 보여주는 일상의 모습에서 나옵니다.



Q5. 엠마님은 지금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을 작성하고 계시죠. 「육아휴직중, 돌아갈까? 나아갈까?」 시리즈 중 프롤로그가 베란다에 매일 날아오는 비둘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였죠. 처음부터 시리즈로 가야겠다고 결심하신 건가요, 아니면 한 편 쓰고 다음 주에 또 쓰게 된 건가요?

한 편 쓰고 나서 시리즈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제가 작년에 굉장히 마음이 힘들 때가 있었어요. 그 연재를 시작할 때가. 미국에 3년간 있다가 한국에 딱 돌아왔는데 — 한국에서 평생을 살았고 미국에 간 건 3년밖에 안 되는데, 뭔가 미국에 평생 살았던 것처럼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한국에 돌아가면 이 정도로 힘들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저는 오히려 아이가 힘들까 봐 아이 걱정만 했지 제 걱정은 안 했거든요. 그런데 정작 제가 너무 힘든 거예요. 애는 한국 공립학교에 가서 너무 잘 적응하는데, 제가 한국에 적응이 안 됐어요. 회사에 바로 돌아갈지 이 휴직 기간을 더 가질지 하는 큰 문제부터 아이 교육 문제, 일상 속 작은 일들까지 갈피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주말부부도 다시 시작했거든요. 남편이 진주에 가 있어서 저 혼자였고,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저는 고민이 많을 때 항상 책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답을 받을 수는 없는 것 같고 내가 답을 찾아가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보자고 결정했어요. 그래서 책을 보고 그 결과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 가장 고민하던 것이 그거였으니까 결론이 안 난 상태에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을 기록해 보자 — 그렇게 시작했던 거죠.

Q6. 하연님의 일터는 안방 화장대 옆 30cm 책상이라고 하셨어요. 이 책상을 ‘자신을 지키는 성벽’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가족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나만의 오피스’로 변환하는 게 쉽지 않죠. 루틴을 지킬 수 있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으세요?

이게 정말 서서히 — 아이들도 그걸 받아들이고, 저도 익숙해지면서 만들어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지금 5살인 저희 딸이 역할 놀이를 하면 ‘엄마는 공부하고 있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해요. 역할 놀이 도중에 그 말이 자꾸 나와요. 그걸 보면서 ‘내가 방에 들어가 공부하는 걸 애가 많이 봤구나‘ 싶었어요. 둘째도 그렇고, 첫째는 어릴 때부터 그걸 봤으니까. ‘엄마는 항상 거기에 있잖아’, 이런 식으로 얘기해요. 꾸준히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거기서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이 침범하지 않는 성벽이 된 거죠. 아이들이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 거죠. 아까 말씀드렸던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가이드 역할만 한다’는 말과 연결되는데, 아이들에게도 ‘공부를 해야 된다, 너에겐 너의 영역이 있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된다.’ 이런 걸 말로 가르쳐 주고 싶지는 않아요. 엄마의 공간이 있음을 보여주고, 그러면 아이들이 ‘원래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야,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저렇게 노력하는 거야’라는 걸 같이 배워 나가는 거죠. 이게 바로 가이드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인 것 같아요.

Q7. 그 책상에는 주로 어떤 게 올라가 있을까요?

제일 오른쪽에는 작년 어버이날에 아들이 저한테 준 ‘Certificate of achievement’가 있어요. 거기에 ‘You are the most beautiful and the hardworking mom in the entire history’라고 적혀 있어요. 그리고 위쪽에는 아들 시간표가 붙어 있고, 제가 향수 같은 걸 좋아해서 향수가 있고, 그 밑에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친구들한테 받았던 편지랑 선물을 올려놨어요.

Part 3. 발견의 관점 (Discoverer’s Perspective)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길어 올린 나만의 속도

미국 산호세에서의 3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리셋된 모래사장 위에서, 그녀는 생존을 위해 삶을 하나씩 쌓아 올렸습니다. 비교급조차 입에 붙지 않던 낯선 자리. 하지만 그 결핍의 공간에서 그녀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속도’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이 Discover의 감각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결핍을 채워주겠다’는 한국의 언어와 ‘아이의 호기심을 발견’하는 미국의 언어 사이. 그녀는 제로 베이스에서 쌓아 올렸던 감각으로 아이를 바라봅니다. 



Q8.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보낸 3년은 처음으로 속도를 늦출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연재 글에서 쓰셨어요. 매일 오후 쿠키를 굽고 햇빛 아래서 커피를 마시던 그 시간이 지금의 엠마 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정말 말 그대로 속도가 빨랐어요. 그때도 주말부부였고, 회사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으니까 진짜 빽빽하게 하루가 돌아갔거든요. 점심시간에도 워킹맘들끼리 모여서 빨리 수다 떨고 빨리 먹고 돌아가고. 한 번씩 휴가를 내서 아이랑만 시간을 보내면 이렇게 시간 보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미국에 가서 회사를 휴직하고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면서, 제 속도로 뭔가를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렇게 썼던 것 같고요.

영어는 사실 가면 그냥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았어요. 제가 해외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영어 공부도 적극적으로 해본 적이 없고, 중고등학교 수능 영어까지만 했었지 그 이후로 영어 공부에 대한 감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면 되겠지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단순한 비교 문장 — 예를 들어 아이한테 맞춰서 영어를 하다 보니 bigger, smaller, the most beautiful 이런 비교급부터가 입에 잘 안 붙더라고요. 그래서 영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많이 했어요. 미국 생활 자체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거였거든요. 집도 인간관계도 다 리셋된 상태에서 모래성 쌓듯 하나씩 쌓아 갔고, 영어도 똑같았어요. 아무것도 없는 데서 하나씩 쌓아 갔어요. 아무것도 없는 제로 베이스에서 한번 만들어 봤다는 그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요. 아, 어디 가서도 이렇게는 살 수 있겠다, 아무것도 없어도 이런 건 할 수 있는 사람이었네 — 그런 감각이요. 그게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 같고, 그걸 다 두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 형태는 없어졌더라도 내가 만들었다는 감각은 남아 있어요. 그것만 남겨놓고 돌아온 것 같아요.

Q9. “He's very curious. She asks thoughtful questions”라고 말하는 미국 선생님과 “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고 말하는 한국 학원 사이에서 엄마로서 마음이 꽤 복잡하셨을 것 같아요. 그 시선의 간극을 하연 님은 어떤 ‘언어적 대안’으로 메우셨나요?

그걸 처음 알아차렸던 게 — 제가 영어 때문에도, 국어 때문에도 상담을 정말 많이 다녔어요. 한국에 와서. 그런데 제 마음에 딱 와닿는 멘트가 그거더라고요. ‘이걸 채워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진짜 등록해야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그 말에 혹하는 게 — 한국 교육에서 정말 많이 쓰는 말이고, 학부모의 마음을 후벼 파는 포인트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공부시키고 교육시키는 이유는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잖아요. 못하는 걸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인데, 그러려면 아이한테 칭찬을 계속 해주고 잘하는 것을 봐줘야 아이가 더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못하는 게 먼저 눈에 보여도 잘하는 걸 계속 말해 주는 것 — 그게 동기부여를 위해 필요하구나 깨달은 이후에는 계속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잘했을 때 하이 파이브를 많이 해주거든요. 남자아이들은 등급 매기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너는 한 번만큼 잘했어, 다섯 번만큼 잘했어, 열 번만큼 잘했어 — 그러면 그 횟수만큼 하이 파이브를 해줘요. 그런 식으로 칭찬해 주려고 해요. 내 눈에는 채워줘야 할 부분이 보이지만, 말할 때는 동기부여를 하고 치어링 업하는 미국적인 언어가 좀 더 강세인 거 — 그게 지금 제가 선택한 언어적 대안인 것 같아요.

Part 4. 반향 (Reverberation)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이 되는 순간

복직의 불안 앞에서 아들은 그녀가 늘 하던 말을 되돌려주었습니다. “엄마, 해보지도 않고 왜 걱정해?” 자녀를 가이드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자녀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 반향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도망이 아닌 방향으로, 멈춤이 아닌 재설계’로 자신의 말을 책임지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Q10. 휴직과 복직을 고민하시면서 '도망이 아니라 방향이고, 멈춤이 아니라 재설계' 라는 문장을 연재 글에 적으셨어요. 완벽한 균형은 없을지라도 그 끈을 붙잡으려 한다는 다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말과 내년 복직 결정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궁금해요.

회사 복직을 고민하면서 아들에게 걱정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들이 저에게 “엄마, 해보지도 않고 왜 그렇게 걱정해?”라고 말하더라고요. 사실 그 말은 제가 늘 아이에게 하던 말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도 일단 경험해 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년에는 회사 일과 함께, 지금 하고 있는 영어와 한국어 수업도 병행해 보려고 해요. 아직 방향을 단정 짓기보다는, 지금 제게 주어진 자리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Q11. 그동안 다뤄오신 책들 중에 엠마라는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책 한 권, 또는 한 줄의 문장이 있으세요?

『Show Your Work』라는 책이에요. 완성된 결과만 보여주기보다, 매일의 작업과 과정을 세상과 나누라는 메시지가 담긴 책인데, 지금의 저와 가장 닮아 있는 책이라고 느껴요. 저도 완벽한 답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 계속 배우고 고민하는 과정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Part 5. 통합(Integration)


일과 돌봄, 회사와 회사 밖. 두 개의 책상이 하나의 다리로 만난다

회사 안팎의 두 정체성은 그녀에게 다른 방향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연결한다는 본질 안에서 두 책상은 하나의 다리로 통합됩니다. 30cm 책상 위의 책은 바뀌어도, 회사 안과 밖의 두 자리를 Connect하는 그녀의 위치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Q12. 엠마 님은 ‘영어로 자기 서사를 짓는 엄마’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년에 첫 출근을 하시면 그 30cm의 책상은 여전히 그대로 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책상이 추가될까요?

일단 공간은 그대로일 것 같아요. 이미 만들어져 있고요. 거기 올라가는 책이 좀 바뀔 수는 있겠죠. 가져오는 주제가 바뀌더라도 공간은 그대로일 것 같아요. 회사에 가면 너무 오래 휴직했어서, 다시 따라잡고 페이스에 맞추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거기에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Q13. 5년 뒤, 가이드로서 엠마 님이 세상에 내놓을 다음 예술(Art)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직은 아주 선명하게 정해진 형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지금처럼 사람들과 배우고 연결되는 경험 안에서, 조금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형태의 Art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내년에는 회사에서의 일과 함께 영어와 한국어 수업도 병행하게 될 예정인데, 저는 이 두 가지가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마케팅도 결국 사람의 마음과 시선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일이고, 가르치는 일도 한 사람의 가능성과 표현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앞으로의 Art도 거창한 결과물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자기다운 언어로 표현하고,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형태에 가까울 것 같아요. 특히 BYS에서 사람들과 함께 루틴을 만들고, 영어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하면서 누군가가 자기 삶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아마 5년 뒤에도 저는 여전히 완성된 답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연결되는 방향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Art를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art 6. 일상 예술 커넥터 (Everyday Art Connector)


일상의 예술을 잇는 매개자

그녀는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보다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가이드가 되기를 선택합니다. 어려운 것을 쉽게, 낯선 것을 다정하게,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잇는 다층적 커넥터. ‘Every Mommy Makes Art’라는 사명을 ‘Everyday Art Connector’라는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 옮기고, 다시 보고, 잇는 이 세 가지 동작이 그녀의 일상을 예술로 완성합니다.



Q14. BYS는 영어를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나를 브랜딩하는 도구로 봅니다. 엠마 님은 이 문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확실한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생각수업을 2년 동안 반복해서 하다 보니 — 당장 그때는 답이 없었어도 그 질문들이 마음에 남았고, 그것과 관련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의 가지들이 모이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 최근에 한국에 온 외국 학생들에게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쳐 줄 기회가 생겼어요. 그게 너무 재미있는데,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모아왔던 경험들 — 영어를 왜 공부해 왔고,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았던 경험을 왜 했는지 알 것 같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더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국어국문을 전공했거든요. 국문을 전공해 왔고, 글 쓰는 걸 왜 해왔는지 — 그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저의 브랜딩과 연결될 수도 있겠다, 그런 것들이 스토리로 연결되면 그 스토리가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도 있겠다 — 그런 생각을 했어요.

Q15. 엠마 님이 운영하시는 Routine English: Bluey편 with Emma 클럽에는 실패해도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규칙이 있어요. 느슨하면서도 다정한 연대를 만드는 거리감과 속도를 엠마 님은 어떻게 발견하게 되셨나요?

미국에 살 때 거실에 큰 창문이 있었어요.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블라인드 커튼을 전부 닫고 지냈죠. 그런데 어느 날 불투명한 창살 무늬 시트지를 창문에 붙여봤어요. 그랬더니 밖이 반은 보이고 반은 안 보이게 됐어요. 그 작은 변화가 제 일상을 바꿨어요. 안에서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햇빛도 은은하게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죠. 그제야 블라인드를 걷어 올릴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제 성격이 제 자신을 완전히 개방하고 사람들과 허그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런데 나를 지킬 수 있는 안정감이 제 안에 생기자 밖으로 나가 이웃에게 인사할 수 있었어요. 이 정도의 거리감과 속도가 저한테 잘 맞고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줌으로 만나서 활동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클럽에 그런 규칙을 만든 이유는 배움에 있어서 동기부여가 정말 중요하잖아요. 처음에는 동기부여가 잘 되고, 마쳤을 때 목표가 완성되면 또 동기부여를 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 중간 지역이 어렵잖아요. 중간에서 실패했을 때 다시 돌아갈 길이 없으면 그냥 헤매다 끝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 중간 구역에서 가이드를 잘 하려면 ‘실패해도 괜찮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돌아올 다리가 끊어지는 게 아니라, 언제든 다시 시트지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주고 싶었어요. 그 느슨하고 안전한 거리감이 있을 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완주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서, 그 부분을 강조해서 클럽을 운영하고 있어요.

Q16. BYS 인터뷰어로 활동을 해 오셨어요. 그 경험들이 하연 님에게 어떤 의미가 됐는지 궁금해요.

그 경험들이 정말 유용하더라고요. 그동안 인터뷰를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 만나서 그렇게 하는 것도 부담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저랑 다른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잖아요,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그런데 나랑 비슷한 걸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건 일단 비슷할 확률이 높은 거고, 같은 목표로 만났기 때문에 연대감도 있고 얘기하기도 편하고 — 그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BYS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편했고, 인터뷰할 때도 편했어요.

근데 저는 편안하다는 걸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데, 너무 편안할 때는 그걸 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편안하게 느끼는 이걸 과정으로 — 이걸 다리 삼아서 한 발짝 나아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도약이 필요하다고요. 예를 들어 BYS 안에서 줌으로 영어 하는 게 편해졌을 때, 이게 끝이 아니라 진짜 나가서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해야 하는 거잖아요. 사람들도 여기서 만났다면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얘기하고 관계를 맺는 것 — 이것도 중요한 것 같아서, 이게 다가 아니고 더 나는 대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인사이트를 많이 얻고 있고요.

Q17. 엠마는 하연 님의 사명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엠마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본인을 정의하는 단어나 문장이 있을까요?

다리 역할을 하는 ‘매개자’, 연결해주는 ‘커넥터’가 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해 주는 것, 미국에서의 경험을 한국과 연결하는 것, 한국어와 영어를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 그런 연결의 순간들을 좋아해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자체에 큰 의미를 느끼는 것 같고요. 그리고 요즘은 BYS에서 사람들과 함께 영어 루틴을 만들어 가면서 저 역시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단순히 영어를 가르친다기보다, 각자의 삶과 이야기를 영어라는 언어로 조금씩 표현해 보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영어를 단순히 실력을 쌓는 도구로만 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영어를 통해 서로 용기를 주고받고, 다른 삶을 이해하고, 자기만의 표현을 찾아가는 경험. 그런 연결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마 그래서 저는 ‘누군가를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보다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커넥터에 더 가까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


EPILOGUE:


Displace the Ordinary, Discover the Art


시트지 너머의 햇빛, 다시 연 커튼

산호세의 거실 창에는 불투명한 시트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은은한 빛과 이웃들을 볼 수 있는 반투명한 경계. 이 느슨하면서도 함께하는 연대는 그녀의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게 했습니다.


그녀가 제안하는 ‘일상의 전치와 발견’은 결국 이 시트지와 닮아 있습니다. 일상을 부정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풍경 위에 아주 얇은 관점의 시트지 한 장을 덧붙이는 것. 그 사소한 시도의 차이가 ‘지루한 반복’을 ‘다정한 창조’로 번역해냅니다.


화장대 옆 30cm 책상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은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그리고 그녀가 놓은 언어의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통해 건네지고 있습니다.


창가의 시트지 너머로 비치는 햇빛처럼, 이하연 님이 건네는 다정한 연결이 당신의 오늘을 새롭게 번역해 주기를 바랍니다.

Displace the Ordinary, Discover the Art

PROLOGUE: 이름이 자리를 옮길 때, 사명이 시작된다


엠마(EMMA) 라는 익숙한 네 글자가 Every Mommy Makes Art 라는 문장 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평범한 이름이 예술의 정의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이하연 님은 익숙한 것을 다른 자리에 두고 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발견한 그 시선의 이동 방법에 대해 기록하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받은 사람이 건네는 사람이 되는, 일상의 예술을 잇는 커넥터로서.


Part 1. 재정의 (Redefinition)질을 길러내기 위한 매일의 루틴과 사유


엄마라는 노동을 예술의 자리에 두다

그녀에게 예술은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이 아닙니다. 익숙한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 — 그 자체가 예술입니다. 아이를 달래는 말 한마디, 가족을 위한 식사를 만드는 일. 이 모든 평범한 반복을 창조의 과정이라는 자리에 옮기는 순간, 일상은 창조적 예술이 됩니다. 익숙한 것의 자리를 비트는 시선의 이동 Displace, 이것이 바로 일상을 예술로 옮겨 놓는 그녀의 방법입니다.



Q1. Every Mommy Makes Art (E·M·M·A) — 어떤 의미를 담아서 지으셨나요?

모든 엄마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아이를 키우고, 하루를 살아내고, 가족을 돌보는 평범한 순간들도 엄마의 사랑과 손길이 더해지면 특별한 작품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의 일상이 반복적이고 지루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반복 속에 가장 깊은 창조성이 있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울 때 달래는 말 한마디, 남은 재료로 가족 식사를 만드는 일, 아이의 그림 한 장을 냉장고에 붙여주는 순간, 지친 하루에도 다시 아이를 안아주는 마음 같은 것들이요. 겉으로 보기엔 작고 평범한 일이지만, 사람을 키우고 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Every Mommy Makes Art”에는 엄마들이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예술가인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삶 속에서 사랑과 분위기, 기억과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Q2. 세월이 흐르면서 그 Art에 관한 정의가 본인 안에서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 하연 님 안에서 Art라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예전의 저는 주로 ‘아름다운 것’ 자체에 끌렸던 것 같아요. 특히 영화가 가진 미학을 정말 좋아했어요.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분위기나 시선이 있다고 느꼈고, 한 장면 한 장면을 분석하면서 볼 정도로 몰입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Art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아름답게 완성된 것을 좋아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것들,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더 예술적이라고 느껴요.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반복적으로 보이는 엄마의 일상도, 다른 시선으로 보면 굉장히 섬세한 창조의 과정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반복되는 하루 안에서도 엄마는 분위기를 만들고,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작은 변화를 통해 그 하루의 감각을 바꾸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저에게 Art는 단순히 ‘예쁜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익숙한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Q3. 본인을 ‘가이드’로 정의하셨습니다. 영웅처럼 정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으로요. 이런 정의가 일상에서 어떤 자유로움을 주거나, 새로운 부담을 가져오기도 하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는 말에 약간의 거리감을 느꼈어요. 정답을 가진 사람이 아래로 전달하는 느낌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환경에서 선생님의 역할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은 AI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받고, 함께 가는 과정 안에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라는 역할이 점점 ‘정답을 주는 사람’보다, 함께 방향을 찾아가고 꾸준히 걸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연결해 주는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껴요. BYS에서 사람들과 함께 영어 루틴을 만들어 가는 경험도 저에게는 그런 의미로 다가왔어요. 가르치는 거는 사실 AI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AI 시대에도 선생님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형태만 바뀔 것 같아요.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동기부여를 주는 사람, 잘 끌고 갈 수 있게 가이드해 주는 사람 — 그게 진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의 역할이 요즘에는 많이 바뀌어야 되는 것 같고, 그렇다면 나도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Q4. ‘정답보다 과정을 믿기로 했다’고 하셨어요. 요즘은 퇴사 성공기나 수익 인증 같은 확실한 결과가 아니라, ‘과정’만으로 엠마라는 브랜드를 구축하면서 불안하지는 않으셨어요? 그 불안을 확신으로 바꾼 순간이 있었나요?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 『Show Your Work』라는 책이었어요. 북클럽으로 만났던 책인데, 저자가 말하는 게 —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는 그 작업을 세상에 보여 주라는 거였어요. 그분이 매일 신문 같은 걸 오려서 페이퍼 아트를 하고, 그걸 매일 공유하면서 ‘내가 하는 게 이런 거야’라는 걸 보여주는 분이거든요. 블로그로 시작해서 인스타그램 계정도 크게 운영하시는데,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표현하는 것 — 그게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짧고 쉬운 원서였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완성되고 성공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 사람들은 그 과정까지 가는 스토리를 보고 싶을 수도 있겠다 — 그런 생각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나의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통로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글을 적게 되었어요. 브런치 사이트에는 밀도 높은 글도 올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브런치라는 매체를 통해 계속 글을 쓰고 있어요.

Part 2. 나만의 출근 (Routine)전문가로서의 태도, 본질을 돕는 대화


안방 화장대 옆, 나를 지키는 30cm 책상

거실도 서재도 아닌 안방 화장대 옆, 30cm 작은 책상. 그녀는 매일 그 작은 책상 앞에서 나만의 출근을 이어가며 매주 한 편의 글을 적었습니다. 「육아휴직중, 돌아갈까? 나아갈까?」라는 주제로 시작된 연재물의 프롤로그는 바로, ‘햇빛 아래 비둘기 한 마리’였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대신, 자신의 공간을 지키며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5살 딸의 역할 놀이 속에 스며든 "엄마는 공부하고 있어" 라는 말은, 가르치지 않아도 매일 보여주는 일상의 모습에서 나옵니다.



Q5. 엠마님은 지금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을 작성하고 계시죠. 「육아휴직중, 돌아갈까? 나아갈까?」 시리즈 중 프롤로그가 베란다에 매일 날아오는 비둘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였죠. 처음부터 시리즈로 가야겠다고 결심하신 건가요, 아니면 한 편 쓰고 다음 주에 또 쓰게 된 건가요?

한 편 쓰고 나서 시리즈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제가 작년에 굉장히 마음이 힘들 때가 있었어요. 그 연재를 시작할 때가. 미국에 3년간 있다가 한국에 딱 돌아왔는데 — 한국에서 평생을 살았고 미국에 간 건 3년밖에 안 되는데, 뭔가 미국에 평생 살았던 것처럼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한국에 돌아가면 이 정도로 힘들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저는 오히려 아이가 힘들까 봐 아이 걱정만 했지 제 걱정은 안 했거든요. 그런데 정작 제가 너무 힘든 거예요. 애는 한국 공립학교에 가서 너무 잘 적응하는데, 제가 한국에 적응이 안 됐어요. 회사에 바로 돌아갈지 이 휴직 기간을 더 가질지 하는 큰 문제부터 아이 교육 문제, 일상 속 작은 일들까지 갈피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주말부부도 다시 시작했거든요. 남편이 진주에 가 있어서 저 혼자였고,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저는 고민이 많을 때 항상 책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답을 받을 수는 없는 것 같고 내가 답을 찾아가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보자고 결정했어요. 그래서 책을 보고 그 결과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 가장 고민하던 것이 그거였으니까 결론이 안 난 상태에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을 기록해 보자 — 그렇게 시작했던 거죠.

Q6. 하연님의 일터는 안방 화장대 옆 30cm 책상이라고 하셨어요. 이 책상을 ‘자신을 지키는 성벽’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가족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나만의 오피스’로 변환하는 게 쉽지 않죠. 루틴을 지킬 수 있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으세요?

이게 정말 서서히 — 아이들도 그걸 받아들이고, 저도 익숙해지면서 만들어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지금 5살인 저희 딸이 역할 놀이를 하면 ‘엄마는 공부하고 있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해요. 역할 놀이 도중에 그 말이 자꾸 나와요. 그걸 보면서 ‘내가 방에 들어가 공부하는 걸 애가 많이 봤구나‘ 싶었어요. 둘째도 그렇고, 첫째는 어릴 때부터 그걸 봤으니까. ‘엄마는 항상 거기에 있잖아’, 이런 식으로 얘기해요. 꾸준히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거기서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이 침범하지 않는 성벽이 된 거죠. 아이들이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 거죠. 아까 말씀드렸던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가이드 역할만 한다’는 말과 연결되는데, 아이들에게도 ‘공부를 해야 된다, 너에겐 너의 영역이 있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된다.’ 이런 걸 말로 가르쳐 주고 싶지는 않아요. 엄마의 공간이 있음을 보여주고, 그러면 아이들이 ‘원래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야,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저렇게 노력하는 거야’라는 걸 같이 배워 나가는 거죠. 이게 바로 가이드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인 것 같아요.

Q7.  그 책상에는 주로 어떤 게 올라가 있을까요?

제일 오른쪽에는 작년 어버이날에 아들이 저한테 준 ‘Certificate of achievement’가 있어요. 거기에 ‘You are the most beautiful and the hardworking mom in the entire history’라고 적혀 있어요. 그리고 위쪽에는 아들 시간표가 붙어 있고, 제가 향수 같은 걸 좋아해서 향수가 있고, 그 밑에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친구들한테 받았던 편지랑 선물을 올려놨어요.

Part 3. 발견의 관점
(Discoverer’s Perspective)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길어 올린 나만의 속도

미국 산호세에서의 3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리셋된 모래사장 위에서, 그녀는 생존을 위해 삶을 하나씩 쌓아 올렸습니다. 비교급조차 입에 붙지 않던 낯선 자리. 하지만 그 결핍의 공간에서 그녀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속도’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이 Discover의 감각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결핍을 채워주겠다’는 한국의 언어와 ‘아이의 호기심을 발견’하는 미국의 언어 사이. 그녀는 제로 베이스에서 쌓아 올렸던 감각으로 아이를 바라봅니다. 


Q8.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보낸 3년은 처음으로 속도를 늦출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연재 글에서 쓰셨어요. 매일 오후 쿠키를 굽고 햇빛 아래서 커피를 마시던 그 시간이 지금의 엠마 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정말 말 그대로 속도가 빨랐어요. 그때도 주말부부였고, 회사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으니까 진짜 빽빽하게 하루가 돌아갔거든요. 점심시간에도 워킹맘들끼리 모여서 빨리 수다 떨고 빨리 먹고 돌아가고. 한 번씩 휴가를 내서 아이랑만 시간을 보내면 이렇게 시간 보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미국에 가서 회사를 휴직하고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면서, 제 속도로 뭔가를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렇게 썼던 것 같고요.


영어는 사실 가면 그냥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았어요. 제가 해외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영어 공부도 적극적으로 해본 적이 없고, 중고등학교 수능 영어까지만 했었지 그 이후로 영어 공부에 대한 감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면 되겠지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단순한 비교 문장 — 예를 들어 아이한테 맞춰서 영어를 하다 보니 bigger, smaller, the most beautiful 이런 비교급부터가 입에 잘 안 붙더라고요. 그래서 영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많이 했어요.

미국 생활 자체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거였거든요. 집도 인간관계도 다 리셋된 상태에서 모래성 쌓듯 하나씩 쌓아 갔고, 영어도 똑같았어요. 아무것도 없는 데서 하나씩 쌓아 갔어요. 아무것도 없는 제로 베이스에서 한번 만들어 봤다는 그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요. 아, 어디 가서도 이렇게는 살 수 있겠다, 아무것도 없어도 이런 건 할 수 있는 사람이었네 — 그런 감각이요. 그게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 같고, 그걸 다 두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 형태는 없어졌더라도 내가 만들었다는 감각은 남아 있어요. 그것만 남겨놓고 돌아온 것 같아요.

Q9. “He's very curious. She asks thoughtful questions”라고 말하는 미국 선생님과 “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고 말하는 한국 학원 사이에서 엄마로서 마음이 꽤 복잡하셨을 것 같아요. 그 시선의 간극을 하연 님은 어떤 ‘언어적 대안’으로 메우셨나요?

그걸 처음 알아차렸던 게 — 제가 영어 때문에도, 국어 때문에도 상담을 정말 많이 다녔어요. 한국에 와서. 그런데 제 마음에 딱 와닿는 멘트가 그거더라고요. ‘이걸 채워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진짜 등록해야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그 말에 혹하는 게 — 한국 교육에서 정말 많이 쓰는 말이고, 학부모의 마음을 후벼 파는 포인트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공부시키고 교육시키는 이유는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잖아요. 못하는 걸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인데, 그러려면 아이한테 칭찬을 계속 해주고 잘하는 것을 봐줘야 아이가 더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못하는 게 먼저 눈에 보여도 잘하는 걸 계속 말해 주는 것 — 그게 동기부여를 위해 필요하구나 깨달은 이후에는 계속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잘했을 때 하이 파이브를 많이 해주거든요. 남자아이들은 등급 매기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너는 한 번만큼 잘했어, 다섯 번만큼 잘했어, 열 번만큼 잘했어 — 그러면 그 횟수만큼 하이 파이브를 해줘요. 그런 식으로 칭찬해 주려고 해요.

내 눈에는 채워줘야 할 부분이 보이지만, 말할 때는 동기부여를 하고 치어링 업하는 미국적인 언어가 좀 더 강세인 거 — 그게 지금 제가 선택한 언어적 대안인 것 같아요.

Part 4.  반향 (Reverberation)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이 되는 순간

복직의 불안 앞에서 아들은 그녀가 늘 하던 말을 되돌려주었습니다. “엄마, 해보지도 않고 왜 걱정해?” 자녀를 가이드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자녀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 반향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도망이 아닌 방향으로, 멈춤이 아닌 재설계’로 자신의 말을 책임지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Q10. 휴직과 복직을 고민하시면서 '도망이 아니라 방향이고, 멈춤이 아니라 재설계' 라는 문장을 연재 글에 적으셨어요. 완벽한 균형은 없을지라도 그 끈을 붙잡으려 한다는 다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말과 내년 복직 결정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궁금해요.

회사 복직을 고민하면서 아들에게 걱정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들이 저에게 “엄마, 해보지도 않고 왜 그렇게 걱정해?”라고 말하더라고요. 사실 그 말은 제가 늘 아이에게 하던 말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도 일단 경험해 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년에는 회사 일과 함께, 지금 하고 있는 영어와 한국어 수업도 병행해 보려고 해요. 아직 방향을 단정 짓기보다는, 지금 제게 주어진 자리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Q11.  그동안 다뤄오신 책들 중에 엠마라는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책 한 권, 또는 한 줄의 문장이 있으세요?

『Show Your Work』라는 책이에요. 완성된 결과만 보여주기보다, 매일의 작업과 과정을 세상과 나누라는 메시지가 담긴 책인데, 지금의 저와 가장 닮아 있는 책이라고 느껴요. 저도 완벽한 답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 계속 배우고 고민하는 과정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Part 5. 통합(Integration)


일과 돌봄, 회사와 회사 밖. 두 개의 책상이 하나의 다리로 만난다

회사 안팎의 두 정체성은 그녀에게 다른 방향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연결한다는 본질 안에서 두 책상은 하나의 다리로 통합됩니다. 30cm 책상 위의 책은 바뀌어도, 회사 안과 밖의 두 자리를 Connect하는 그녀의 위치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Q12. 엠마 님은 ‘영어로 자기 서사를 짓는 엄마’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년에 첫 출근을 하시면 그 30cm의 책상은 여전히 그대로 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책상이 추가될까요?

일단 공간은 그대로일 것 같아요. 이미 만들어져 있고요. 거기 올라가는 책이 좀 바뀔 수는 있겠죠. 가져오는 주제가 바뀌더라도 공간은 그대로일 것 같아요. 회사에 가면 너무 오래 휴직했어서, 다시 따라잡고 페이스에 맞추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거기에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Q13. 5년 뒤, 가이드로서 엠마 님이 세상에 내놓을 다음 예술(Art)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직은 아주 선명하게 정해진 형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지금처럼 사람들과 배우고 연결되는 경험 안에서, 조금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형태의 Art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내년에는 회사에서의 일과 함께 영어와 한국어 수업도 병행하게 될 예정인데, 저는 이 두 가지가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마케팅도 결국 사람의 마음과 시선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일이고, 가르치는 일도 한 사람의 가능성과 표현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앞으로의 Art도 거창한 결과물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자기다운 언어로 표현하고,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형태에 가까울 것 같아요. 특히 BYS에서 사람들과 함께 루틴을 만들고, 영어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하면서 누군가가 자기 삶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아마 5년 뒤에도 저는 여전히 완성된 답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연결되는 방향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Art를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art 6. 일상 예술 커넥터 
(Everyday Art Connector)


일상의 예술을 잇는 매개자

그녀는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보다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가이드가 되기를 선택합니다. 어려운 것을 쉽게, 낯선 것을 다정하게,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잇는 다층적 커넥터. ‘Every Mommy Makes Art’라는 사명을 ‘Everyday Art Connector’라는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 옮기고, 다시 보고, 잇는 이 세 가지 동작이 그녀의 일상을 예술로 완성합니다.


Q14. BYS는 영어를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나를 브랜딩하는 도구로 봅니다. 엠마 님은 이 문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확실한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생각수업을 2년 동안 반복해서 하다 보니 — 당장 그때는 답이 없었어도 그 질문들이 마음에 남았고, 그것과 관련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의 가지들이 모이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 최근에 한국에 온 외국 학생들에게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쳐 줄 기회가 생겼어요. 그게 너무 재미있는데,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모아왔던 경험들 — 영어를 왜 공부해 왔고,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았던 경험을 왜 했는지 알 것 같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더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국어국문을 전공했거든요. 국문을 전공해 왔고, 글 쓰는 걸 왜 해왔는지 — 그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저의 브랜딩과 연결될 수도 있겠다, 그런 것들이 스토리로 연결되면 그 스토리가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도 있겠다 — 그런 생각을 했어요.

Q15. 엠마 님이 운영하시는 Routine English: Bluey편 with Emma 클럽에는 실패해도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규칙이 있어요. 느슨하면서도 다정한 연대를 만드는 거리감과 속도를 엠마 님은 어떻게 발견하게 되셨나요?

미국에 살 때 거실에 큰 창문이 있었어요.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블라인드 커튼을 전부 닫고 지냈죠. 그런데 어느 날 불투명한 창살 무늬 시트지를 창문에 붙여봤어요. 그랬더니 밖이 반은 보이고 반은 안 보이게 됐어요.

그 작은 변화가 제 일상을 바꿨어요. 안에서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햇빛도 은은하게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죠. 그제야 블라인드를 걷어 올릴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제 성격이 제 자신을 완전히 개방하고 사람들과 허그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런데 나를 지킬 수 있는 안정감이 제 안에 생기자 밖으로 나가 이웃에게 인사할 수 있었어요. 이 정도의 거리감과 속도가 저한테 잘 맞고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줌으로 만나서 활동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클럽에 그런 규칙을 만든 이유는 배움에 있어서 동기부여가 정말 중요하잖아요. 처음에는 동기부여가 잘 되고, 마쳤을 때 목표가 완성되면 또 동기부여를 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 중간 지역이 어렵잖아요. 중간에서 실패했을 때 다시 돌아갈 길이 없으면 그냥 헤매다 끝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 중간 구역에서 가이드를 잘 하려면 ‘실패해도 괜찮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돌아올 다리가 끊어지는 게 아니라, 언제든 다시 시트지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주고 싶었어요. 그 느슨하고 안전한 거리감이 있을 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완주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서, 그 부분을 강조해서 클럽을 운영하고 있어요.

Q16. BYS 인터뷰어로 활동을 해 오셨어요. 그 경험들이 하연 님에게 어떤 의미가 됐는지 궁금해요.

그 경험들이 정말 유용하더라고요. 그동안 인터뷰를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 만나서 그렇게 하는 것도 부담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저랑 다른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잖아요,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그런데 나랑 비슷한 걸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건 일단 비슷할 확률이 높은 거고, 같은 목표로 만났기 때문에 연대감도 있고 얘기하기도 편하고 — 그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BYS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편했고, 인터뷰할 때도 편했어요.


근데 저는 편안하다는 걸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데, 너무 편안할 때는 그걸 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편안하게 느끼는 이걸 과정으로 — 이걸 다리 삼아서 한 발짝 나아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도약이 필요하다고요. 예를 들어 BYS 안에서 줌으로 영어 하는 게 편해졌을 때, 이게 끝이 아니라 진짜 나가서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해야 하는 거잖아요. 사람들도 여기서 만났다면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얘기하고 관계를 맺는 것 — 이것도 중요한 것 같아서, 이게 다가 아니고 더 나는 대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인사이트를 많이 얻고 있고요.

Q17. 엠마는 하연 님의 사명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엠마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본인을 정의하는 단어나 문장이 있을까요?

다리 역할을 하는 ‘매개자’, 연결해주는 ‘커넥터’가 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해 주는 것, 미국에서의 경험을 한국과 연결하는 것, 한국어와 영어를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 그런 연결의 순간들을 좋아해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자체에 큰 의미를 느끼는 것 같고요. 그리고 요즘은 BYS에서 사람들과 함께 영어 루틴을 만들어 가면서 저 역시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단순히 영어를 가르친다기보다, 각자의 삶과 이야기를 영어라는 언어로 조금씩 표현해 보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영어를 단순히 실력을 쌓는 도구로만 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영어를 통해 서로 용기를 주고받고, 다른 삶을 이해하고, 자기만의 표현을 찾아가는 경험. 그런 연결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마 그래서 저는 ‘누군가를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보다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커넥터에 더 가까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


EPILOGUE:


Displace the Ordinary, Discover the Art

시트지 너머의 햇빛, 다시 연 커튼


산호세의 거실 창에는 불투명한 시트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은은한 빛과 이웃들을 볼 수 있는 반투명한 경계. 이 느슨하면서도 함께하는 연대는 그녀의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게 했습니다.


그녀가 제안하는 ‘일상의 전치와 발견’은 결국 이 시트지와 닮아 있습니다. 일상을 부정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풍경 위에 아주 얇은 관점의 시트지 한 장을 덧붙이는 것. 그 사소한 시도의 차이가 ‘지루한 반복’을 ‘다정한 창조’로 번역해냅니다.


화장대 옆 30cm 책상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은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그리고 그녀가 놓은 언어의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통해 건네지고 있습니다.


창가의 시트지 너머로 비치는 햇빛처럼, 이하연 님이 건네는 다정한 연결이 당신의 오늘을 새롭게 번역해 주기를 바랍니다.